남양 군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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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922년]] 일본은 [[팔라우]]의 [[코로르]]에 통치 기관을기관인 [[남양청]]을 설치했다. 남양청은 행정 및 사법 업무를 관할하였고, 산업 개발 및 [[교육]](특히 [[일본어]] 교육) 사업을 수행했다. 당시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은 [[사탕수수]] 제당(製糖), [[코프라]](말린 [[코코넛]]), 수산물, [[인]] 광업 등이었고, 대일(對日) 교역은 흑자였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인]]이 이 시기에 이주하여 한 때는 일본인 인구가 현지 주민 인구(약 5만 명)를 웃돌기도 했다. [[1933년]], 일본은 국제 연맹에서 탈퇴했지만, 그 후에도 이 지역에 대한 통치는 인정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남양 군도는 미일 전투의 격전지가 되었고, [[북마리아나 제도]]는 일본을 향한 미군 [[폭격기]]의 출발기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이 지역은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이후, 미국의 자치령인 [[북마리아나 제도]]를 제외하고는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로 각각 독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