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병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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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병춘'''(咸秉春,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외교관, 법학자이다. 본관은 [[강릉 함씨|강릉]](江陵). 제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의 아들이고, 농림부장관, 강원대학 학장을 지낸 [[함인섭]]의 이복 삼촌이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때 테러로 사망하였다.
 
== 생애 ==
[[1932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나 [[노스웨스턴 대학교]]를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59년]]에 [[하버드 법학대학원|하버드 로스쿨]]에서 법률과학 박사(S.J.D.) 학위를 받았다. [[1959년]]에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법철학, 영미법, 한국법제사 강의를 맡으면서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후 [[양승두]] 교수와 한국인의 법 의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한국어 논문 뿐만 아니라 영어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1932년]] [[2월 26일]]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함태영]]의 13남매 중 13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는 4살 연상의 동복 친형 함병소만이 남아 있었다. [[1943년]] 어머니 고숙원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셋방에서 사망하고 아버지 [[함태영]]에 의해 양육되었다.
 
[[1932년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 공군]]에 서울에서장교로 태어나입대하여 [[경기고등학교1952년]] 졸업하고,공군 중위로 예편하였다. 1953년 1월 미국으로 떠나 [[노스웨스턴 대학교]]를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59년]]에 [[하버드 법학대학원|하버드 로스쿨]]에서 법률과학 박사(S.J.D.) 학위를 받았다. [[1959년]]에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법철학, 영미법, 한국법제사 강의를 맡으면서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후 [[양승두]] 교수와 한국인의 법 의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한국어 논문 뿐만 아니라 영어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외교안보 담당 특별 보좌관 및 잇달아 정치담당 특별 보좌관이 되었다. 1973년 12월 31일 하오, 한국 정부는 함병춘 대통령 정치담당 특별 보좌관을 주미 대사로 임명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01040032920102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1-04&officeId=00032&pageNo=1&printNo=8698&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에 咸秉春씨 임명 | 날짜 = 1974-1-4| 출판사 =경향신문 }}</ref> [[1974년]]에 주미 대사로 부임하였다. [[10·26 사태]] 이후 다시 연세대학교 교수로 복직하여 법철학, 동양법제사, 법인류학 등을 강의하다가 다시 [[1982년]]에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1983년]]에 [[미얀마|버마]]에서 일어난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으로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