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우르바노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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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년 5월 25일 나폴리 왕 [[루이지 1세]]가 갑자기 사망하자 나폴리 왕국 안에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조반나 1세 (나폴리)|조반나 1세]] 여왕은 남편에게 빼앗겼던 권력을 되찾으려고 했으며, 그녀의 차기 남편감들 사이에 경쟁이 촉발되었다. 아비뇽에 소환된 기욤 아빠스는 6월 27일 나폴리에 가서 나폴리의 영주인 교황 인노첸시오 6세의 충고와 조언을 전달하였다.<ref>Chaillan, p. 20-21.</ref>
 
남쪽으로 길을 가던 중에 그는 [[몬테카시노]]의 거대한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을 방문하였다. 그는 지진과 주교의 방치로 인해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수도원의 상태가 크게 무너진 것을 보고 탄식하였다. 나중에 교황이 되자마자 그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몸소 나섰다. 그리하여 1367년 3월 31일 카시노 교구를 폐지하고 수도원을 전적으로 아빠스의 통제 아래 두도록 하였다.<ref>{{cite book|editor=Tomassetti, Aloysius|title=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aurinensis editio|url=https://books.google.com/books?id=DCxOAQAAMAAJ|edition=Tomus IV|year=1859|publisher=Seb. Franco et Henrico Dalmazzo editoribus|location=토리노|language=라틴어|pages=523–524}}</ref>
아빠스의 통제 아래 두도록 하였다.<ref>{{cite book|editor=Tomassetti, Aloysius|title=Bullarum, diplomatum et privilegiorum sanctorum romanorum pontificum Taurinensis editio|url=https://books.google.com/books?id=DCxOAQAAMAAJ|edition=Tomus IV|year=1859|publisher=Seb. Franco et Henrico Dalmazzo editoribus|location=토리노|language=라틴어|pages=523–524}}</ref>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