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망 장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프랑스의 총리; 예쁘게 바꿈
55번째 줄:
}}
 
[[파일:Triple Portrait of Cardinal de Richelieu probably 1642, Philippe de Champaigne.jpg|thumb섬네일|200px|리슐리외의 삼면 초상화]]
'''아르망 장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 엣 드 프홍삭 추기공작'''({{llang|fr|Armand Jean du Plessis, cardinal-duc de Richelieu et de Fronsac}}, [[1585년]] [[9월 9일]] - [[1642년]] [[12월 4일]])는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귀족]]이며, [[로마 가톨릭]]의 [[추기경]]이다. 162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루이 13세]]의 재상을 맡았다. [[알렉상드르 뒤마|대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악당 추기경으로 나와 악당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리슐리외는 당시 프랑스의 중앙집권을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지방 귀족들을 제거했다. 리슐리외의 정치적 행보는 분명 위그노와 지방 귀족들을 탄압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중앙집권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된 일이었다. 그의 이런 행보는 악당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소설 [[삼총사]]에서 보여주듯이 강단있는 사람이었다. 리슐리외의 정치적 업적은 이후 등장하는 루이 14세에서 빛을 발한다.
 
70번째 줄:
== 종교정책 ==
=== 개신교에 대한 탄압 ===
[[파일:Siege of La Rochelle 1881 Henri Motte 1846 1922.jpg|thumb섬네일|200px|라로셸 포위전에서 리슐리외]]
 
또한, [[프랑스]] 내 [[개신교]] 곧 [[위그노]]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온건한 자세를 취하였으나,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맞서 [[영국]]을 끌어들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억압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이에 맞서 신앙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는 [[개신교]] 신자들은 프랑스 서부 해안도시인 라 로셸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1627년]] 프랑스 내 개신교 세력의 중심지인 라 로셸을 1년 동안 포위해 공략했다. {{참조|라로셸 공성전}}
85번째 줄:
 
== 문학작품 속의 리슐리외 ==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삼총사]]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부추기고 왕권을 등에 엎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비열한 악당으로 묘사되었다. 이 때문에 《[[삼총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 참고 문헌 ==
112번째 줄:
{{전거 통제}}
{{기본정렬:리슐리외, 아르망 장 뒤 플레시 드}}
 
[[분류:1585년 태어남]]
[[분류:1642년 죽음]]
줄 122 ⟶ 123:
[[분류:프랑스의 30년 전쟁 관련자]]
[[분류:리슐리외 공작]]
[[분류:프랑스의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