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우르바노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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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랑 추기경이 선종한 데다가 장 2세가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 끌려가자 피에르 1세는 크게 낙담했다. 그렇지만 1365년 10월 11일 그는 자신이 끌어모을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모아서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승전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추가 병력이 없는 데다가 적군이 키프로스군보다 훨씬 벙력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는 하는 수 없이 도시에 대한 약탈과 소각을 지시하고 철수했다. 피에르 1세는 1369년에 암살되기 전까지 시리아와 이집트 해안에 대한 공세를 계속 했다. 우르바노 2세는 장 2세의 군사 원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ref>Baluze (1693), I, p. 371-372. {{cite book|author1=Richard Ernest Dupuy|author2=Trevor Nevitt Dupuy|title=The Encyclopedia of Military History from 3500 B.C. to the Present|url=https://books.google.com/books?id=I5wOCyiM-mQC|year=1986|publisher=Harper & Row|location=New York|isbn=978-0-06-181235-4|page=386}}</ref>
 
사보이의 아메데오와 헝가리의 [[러요시 1세]]도 1366년 우르바노 5세 재위기간 중에 함께 십자군 원정에 나섰다. 초반에 그들의 원정은 성공적이었으며, 아메데오는 [[겔리볼루 반도]]를 정복했다. 그렇지만 초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 했다.<ref>Dupuy and Dupuy, p. 389.</ref>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