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우르바노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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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갔다가 돌아오다===
로마를 떠나있던 우르바노 5세는 이탈리아에서 계속 일어나는 문제와 더불어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와 [[스웨덴의 비르지타]]의 탄원을 받던 중에 자신의 대리인 알보르노스 추기경이 선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추기경의 유해는 아시시에 보내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정중히 안장하도록 지시했다. 교황은 1367년 10월 16일 로마에 도착했는데, 이는 교황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교구인 로마 땅을 다시 밟은 것이었다. 그가 로마에 온 것은 순전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의 집전 아래 [[보헤미아의 알주베타]]의 황후 대관식을 보고자 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의 요청 때문이었지만, 로마의 성직자들과 시민들은 크게 기뻐하며 환영하였다. 비록 로마 귀환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키프로스의 피에르 1세와 나폴리의 [[조반나 1세]]의 충성 맹세는 물론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5세 팔레올로고스]]의 신앙 고백<ref>Aleksandr Aleksandrovich Vasiliev, ''History of the Byzantine Empire, 324-1453'', Vol. 2,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80), 671.</ref>을 받아냈다. 새로운 수도 공동체인 [[비르지타회]]의 인가를 받기 위해 로마에 거주하던 스웨덴의 비르지타 수녀는 교황이 프랑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1370년 교황을 알현하였다. 비르지타 수녀는 차기 교황이 되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피에르 로제 드 보포르]] 추기경에게 만일 교황이 다시 로마를 떠난다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ref>Chaillan, pp. 197-198.</ref> 실제로 비르지타의 예언대로 교황은 로마를 떠난 후에 선종하였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