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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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암'''(申繼黯, ? ~ ?)는 [[조선]] 후기의 [[역관]](譯官)이다. 본관은 [[평산 신씨|평산]]이다.
 
== 생애 ==
일찍이 [[만주어]]에 능통하였으며, 1626년 [[조선 인조|인조]] 당시에 [[오윤겸]](吳允謙)의 추천으로 만주어 역관이 되었다. 이후 1629년 사신을 따라 [[후금]]의 수도인 [[선양 시|선양]](瀋陽)을 방문했으며, 그 뒤 10여 년 동안 봄 · 가을 기간에 [[청나라]]를 내왕하면서 만주어와 [[만주 문자]]의 연구를 하였다.
 
이후 옛 [[여진 문자]]로 전해져 오던 교습서인 <구난(仇難)>, <거화(巨化)>, <팔세아(八歲兒)>, <소아론(小兒論)>, <상서(尙書)> 등 5책을 새로운 만주어로 개역했으며,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 당시에 청나라로 잡혀간 조선인 [[포로]]들의 송환에도 공헌하며 참상관(參上官)에 오른 뒤 승진을 거듭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토막글|한국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