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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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총련은 특유의 권위주의적 성향과 패권적 운동관으로 인해 [[1996년]] 연세대 사태와 [[1997년]] 한양대 출범식 사건으로 여러 학생운동그룹들과 상당수 학교들이 탈퇴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당시 한총련을 탈퇴한 학생운동그룹들은 전국학생회협의회, 전국학생연대회의, 참대학 등의 독자적인 학생운동조직, 학생회협의체를 건설하였다.
 
한총련이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결되었고 한총련에 가입한 단과대학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 자동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국가보안법위반자가 급증하여 사회문제가 되었다. 1997년 191명이 구속되어 전원 기소되었고 1998년 127명 구속되어 121명 기소, 1999년 162명 구속 149명 기소, 2000년 101명 구속 95명 기소, 2001년8월까지 13명 구속 4명 기소로 전체 594명이 구속되어 560명이 재판을 받았다.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판결이 나서 집중적으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한 건수가 늘었던 김대중 정부에서 전체 [[국가보안법]]위반 구속자의 53%가 한총련 대의원이다.
 
구체적으로 한총련 제5기(1997년) 사법처리 대상자 388명 중에 206명이 구속, 160명이 불구속되어 351명 구공판 기소, 115명 기소유예, 체포되지 않은 사람이 22명이었으며 1998년 제6기는 301명 중에 145명이 구속되고 118명이 불구속 6명 내사종결되어 구공판기소 252명 기소유예 11명 체포되지 않은 사람 32명이며 7기(1999년)는 291명 중에 97명이 구속되고 48명이 불구속 16명 내사종결이며 구공판 137명 기소유예 8명 체포되지 않은 사람 130명으로 5~7기 전체 사법처리 대상자 980명 가운데 448명이 구속되고 740명이 재판을 받았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1363.html]</ref>
 
2000년 중반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화 되었으며 2013년 기준으로는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태다. 2000년대 초반 한총련 소속 일부 세력이 독자적인 한대련을 만들고, 이후 몇년간 두조직이 함께 존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