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보니파시오 9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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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톰마첼리는 1350년경 나폴리 태생으로 안드레아라는 형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제노바와 [[나폴리 왕국]] [[카사라노]]에 자리잡은 영향력 있는 귀족 집안에 속했던 톰마소 치보의 후손이었다. 젊은 나이에 [[추기경]]이 되었는데, 교황이 되기 전까지의 경력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동시대 독일의 자료를 근거로 [[니하임의 디트리히]]는 그가 문맹이었다고 주장했다(nesciens scribere etiam male cantabat). [[교황 우르바노 6세]]의 선종으로 아비뇽의 대립 교황은 프랑스 왕 [[샤를 6세]]의 외교 경로를 통해 로마 측 추기경들이 자신을 우르바노 6세의 후계자로 추대하여 분열을 종식될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로마 측 추기경들은 톰마첼리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뛰어난 신학자도 아니었고 행정력도 뛰어나지 않았던 그는 전임자와는 대조적으로 요령 있고 신중한 인물로 어려운 시기를 타개하기에 제격으로 비춰졌지만, 루트비히 파스토르는 그의 치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시기 동안 일치를 위한 수많은 노력은 교회 역사에서 가장 슬픈 일련의 사건들로 이어진다. 교황은 이러한 끔찍한 사태를 종식시킬 만한 도량을 갖고 있지 못했다.”<ref>Pastor, ''The History of the Popes: From the Close of the Middle Ages'' (1906), vol. i, p 165.</ref> 1389년 콘클라베에서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에 독일과 잉글랜드, 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대다수가 그를 교황으로 받아들였다. 그 외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아비뇽의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지지했다. 교황 보니파시오 9세와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서로를 파문하였다.<ref name="Catholic">{{Catholic|wstitle=Pope Boniface IX|inline=yes}}</ref>
 
톰마첼리가 선출되기 전날 로마 교황에게 순명을 맹세한 14명의 추기경이 로마에서 신자들과 함께 남아 있는 한편, 아비뇽의 대립 교황 클레멘스는 [[앙주의 루이 2세]]의 나폴리 왕 대관식을 집전했다. 젊은 라디슬라오는 1386년 암살당한 나폴리 왕 카를로 3세의 정당한 상속인이었으며, 그의 어머니 두라초의 마르가리타는 전통적으로 로마에서 교황을 지지하며 반교황파와 투쟁한 명문 집안의 후손이었다. 보니파시오 9세는 1390년 5월 29일 [[가에타]]에서 라디슬라오의 나폴리 왕 대관식을 집전하였으며, 이후 10년 간 이탈리아 남부에서 앙주 가문 파벌을 몰아내기 위해 서로 협력하였다.<ref name="Catholic"/>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