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보니파시오 9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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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파시오 9세의 치세 동안 로마에서는 두 차례 성년을 지냈다. 첫 번째 성년은 1390년의 것으로, 그의 전임자 [[교황 우르바노 6세]]가 선언한 것이었다. 독일과 헝가리, 폴란드, 보헤미아, 잉글랜드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로마를 많이 찾아왔다. 독일의 일부 도시들에서는 성년 순례가 인정되어 전대사를 발표했으나 대사 설교에 있어서 남용과 추문이 일어나기도 했다. 1400년에 지낸 두 번째 성년은 특히 흑사병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수많은 순례자가 로마를 방문하였다. 보니파시오 9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로마에 그대로 머물렀다.<ref name="Catholic"/>
 
1399년 후반기에는 특히 과거 [[카타리파]]가 준동하였던 프로방스 지역에서 비안키 혹은 알바티(하얀 속죄자)라고 불리는 채찍으로 스스로 자기 몸을 편태하는 무리들인 이른바 채찍질 고행단이 생겨났다. 이러한 운동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북부에 퍼져나갔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