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룰리우마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7번째 줄:
수피률리우마는 그후 파라오 [[아크나톤]]의 떠들석한 치세를 이용하였고 [[시리아]]에서의 [[이집트]] 영토를 장악하였다. 그리고 많은 이집트 속국을 반란하게 자극하였다.
 
이후 [[투탕카멘]] 파라오 시절되었는데, 투탕카멘이안타깝게도 그는 1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사망하였다. 그러자 그의 미망인인 안케세나멘이 수필률리우마에게 편지를 보내왔다.<ref>"이집트의 기록에는 그 편지가 남아있지 않지만,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터키의 [[하투사스]]에서 발견된 문서보관소의 그 편지의 사본이 남아 있다." 피터 클레이턴, 《파라오의 역사》, 까치글방, 2004</ref> 그 내용은 수필률리우마의 아들이 그녀의 남편이 되어 이집트를 다스릴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였다. 투탕카멘은 왕자를 남기지 않았으며, 안케세나멘은 투탕카멘 시절의 권력자 [[아이 (파라오)|아이]]와 강제로 결혼할 처지였다. 수필률리우마는 대사를 이집트로 보내 이 사실을 조사하게 하였다.
 
그는 편지가 상황이 정확히 기록되었다고 보고하였고 왕은 이 뜻밖의 기회을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불행히도 왕자 잔난자는 도중에 피살되고 결혼 동맹은 결국 승인되지 않았다. 수필률리우마는 이번에는 매우 진노하여 가나안과 북시리아의 이집트 속국을 그의 군대로 해방시켰고 많은 영토를 포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