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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26일]]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함태영]]의 14남매 중 14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함태영]]은 두 번 상처하고 세번째 부인으로 고숙원과 재혼하였다. 아버지 함태영은 환갑이 넘어 그를 보았는데, 함태영은 20세가 되기 전 본처에게서 아들 함병석을 얻었고, 일찍 죽은 50여년 연상의 이복 형 함병석의 아들로, 함병춘보다 20년 연상인 이복 조카 [[함인섭]], [[함의섭]]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날 때는 4살 연상의 동복 친형 함병소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연동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이후로도 계속 교회를 다녀 집사로 활동했다. [[1943년]] 어머니 고숙원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셋방에서 사망하고 아버지 [[함태영]]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머니 사후 아버지 [[함태영]]이 직접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한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944004 아웅산 테러 30년,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의 思父曲]</ref>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 공군]]에 장교로 입대하여 [[1952년]] 공군 중위로 예편하였다. 1953년 1월 미국으로 떠나 [[노스웨스턴 대학교]]를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59년]]에 [[하버드 법학대학원|하버드 로스쿨]]에서 [[법률과학]] [[박사]](S.J.D.) 학위를 받았다.
 
=== 교육, 정치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