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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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보]](慕容寶)로부터 개봉공(開封公)으로 봉해졌으며, 중산(中山)을 지켰다. 이후 모용보의 아들인 [[모용회]](慕容會)가 모용보에 반란을 일으켰다 패배하여 중산으로 오자 모용회를 살해하였다.
 
397년 모용보가 [[북위 (북조)|북위]](北魏)의 군대에 패한 뒤 [[연경|]](薊)로 피신하자, 중산에서 스스로 후연의 황제를 자칭하면서 연호를 건시(建始)로 하였다. 그러나 폭정으로 인해 곧 민심을 잃게 되었고, 그 해 [[모용린]](慕容麟)이 이끄는 [[정령 (민족)|정령족]](丁零)의 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오호 십육국의 군주}}
{{토막글|중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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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397년 죽음]]
[[분류:후연의 황제]]
[[분류:살해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