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나케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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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케스 2세'''([[그리스어]] ''Φαρνάκης'',[[기원전 47년]] 죽음)은 [[폰투스]]의 [[미트라다테스 6세]]의 아들로 [[로마 공화정]] 말기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패했다.
== 반역 ==
파르나케스의 어린 시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버지 미트라다테스 대왕은 로마에 세번이나 반기를 들었고 당대의 로마의 용장들과 싸웠으나 결국 [[폼페이우스]]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 파르나케스는 30세였는데 그는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반역을 꾀하였고 로마군과 싸우는 것을 꺼려한 [[폰투스]]의 군사들도 이 때 파르나케스에게 협력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들에게 쫓겨난 아버지 [[미트라다테스 6세]]는 결국 쓸쓸히 자살하고 말았다. 파르나케스는 폼페이우스에게 아버지의 시체를 보내고 항복한후 왕위를 보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 때와는 훨씬 줄어든 왕국을 유지했다.
== 카이사르와의 전쟁 ==
[[기원전 49년]] 로마에서 카이사르의 내전이 일어나자 파르케나스는 부왕의 통치 시절의 왕국의 영토 부활을 기치를 삼고 주변국을 침략하였다. [[흑해]] 남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노프를 함락시키고 [[카파도키아]]를 침략하였다. 카이사르는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 부관인 도미티우스에게 3개 로마 군단을 주고 소아시아로 보내어 파르나케스를 상대하게 했으나 곧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집트 내전에 휘말린 카이사르는 2개 군단을 빼내 이집트로 보내게 했다. 그 사이 파르케나스는 소아시아 지역의 절반을 점령하고 도미티누스를 격퇴하여 시리아로 퇴각시켰다.
 
카이사르는 이집트 원정을 마무리 하고 [[기원전 47년]] 6월 직접 파르나케스를 상대하러 [[소아시아]]로 왔다. 처음에 파르케나스는 외교교섭을 벌이면서 시간을 벌려고 했으나 카이사르가 교섭을 포기하고 행군속도를 높이자 결국 젤라(지금의 [[터키]]의 질레)에서 양군이 맞붙었다. 결과는 카이사르의 완승으로 끝나고 파르케나스는 겨우 도망쳤다. 그는 보스포루스로 돌아가 몇개 도시의 영향력을 회복했으나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싸우다 죽었다.
 
[[Category분류:기원전 47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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