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참수 경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바깥 고리 → 외부 링크)
Metrobot (토론 | 기여)
잔글 {{Ja-y}} 제거
1번째 줄:
[[파일:Contest_To_Cut_Down_100_People.jpg|right|thumb|350px|당시 신문 기사]]
{{난징 대학살}}
'''100인 참수 경쟁'''(100人斬首競爭, {{llang|ja-y|百人斬|ひゃくにんぎ}}り{{ruby|競争|きょうそう}}, {{zh|t=百人斬|s=百人斩}})은 [[중일전쟁]] 시기의 [[중화민국|중국]]에서 일본의 두 군인들이 누가 먼저 100인을 군도(軍刀)로 살해하는지를 겨뤘다는 사건이다.
 
[[1937년]] [[11월 30일]]자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大阪每日新聞)과 [[12월 13일]]자 ‘도쿄 니치니치 신문’(東京日日新聞)에서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소위가 [[일본도]](日本刀)로 누가 먼저 100인을 [[참수]] 시키는지를 겨뤘다고 보도되었는데, 패전 이후 이들은 중국 난징에서 열린 난징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총살형]]을 당했다. 그리고 최후까지 자신들은 결코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없으며, 신문 보도도 단순한 창작 기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도 무카이 소위의 딸과 노다 소위의 아내, 손녀가 현재 일본의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을 상대로 명예 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해 우익 단체들의 재정적인 지원도 받으며 대법원에서 재판을 했으나 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