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노부아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Metrobot (토론 | 기여)
잔글 {{Ja-y}} 제거
1번째 줄:
[[파일:Tsugaru Nobuaki.jpg|섬네일|쓰가루 노부아키]]
'''쓰가루 노부아키'''({{llang|ja-y|津軽信著|つがる のぶあき|츠가루 노부아키}}, [[1719년]] [[4월 16일]] ~ [[1744년]] [[7월 5일]])는 [[히로사키 번]]의 6대 번주이다. 어릴적 이름은 가쓰치요({{lang|ja|勝千代}})이다. 관위는 종5위하, [[데와노쿠니|데와]]노카미({{lang|ja|出羽守}})이다.
 
교호(享保) 4년([[1719년]]) [[음력 2월 27일]], 5대 번주 [[쓰가루 노부히사]]의 장남인 [[쓰가루 노부오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노부오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1731년]] [[음력 5월 16일]], 노부히사가 은거하자 그 뒤를 이어 번주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재임할 때 해일, 홍수, 대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연이어지고 흉작이 계속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번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절약과 쌀 대여 제도 등을 중심으로 한 번정 개혁을 단행했다. 노부아키는 부호들로부터 돈을 징수하여 농민들을 구휼하고 소송함을 설치하여 의견을 널리 수용하였다. 또 [[난학]]을 중심으로 한 문무 학문을 장려하는 등 다양한 개혁 정책을 폈다. 그러나 [[1744년]] [[음력 5월 11일]], 히로사키에 큰 화재가 발생하고, 25일에는 노부아키마저 26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개혁은 좌절되었다. 장남인 [[쓰가루 노부야스|노부야스]]({{lang|ja|信寧}})가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