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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Dongguk University)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small>(본교)</small>와 [[경상북도]] [[경주시]]<small>(분교)</small>, [[경기도]] [[고양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 캠퍼스를 둔 4년제 [[사립 대학|사립 대학교]]로,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놓여 있던 [[1906년]] [[불교]]계 선각자들이 교육구국(敎育救國)의 목표를 갖고 [[불교]]인재를 길러내고자 설립한 '''명진학교'''(明進學校)에서 시작됐다. 약칭은 [[부산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동대(東大)'''이다.
[[대한제국]] [[광무 (연호)|광무]] 10년인 [[1906년]] 불교연구회(佛敎硏究會)가 주체가 돼 명진학교를 세운 뒤로 [[1946년]]에 동국대학으로 승격됐으며,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돼 오늘날의 동국대학교가 됐다.<ref name="역사">{{웹 인용|url=http://www.dongguk.edu/mbs/kr/subview.jsp?id=kr_010201010000|제목=동국대학교 연혁|확인일자=2013-6-6}}</ref>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술과 인격을 연마하고 민족과 인류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 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 세계의 구현을 건학이념으로 삼고 있다.<ref name="이념">{{웹 인용|url=http://www.dongguk.edu/mbs/kr/subview.jsp?id=kr_010202000000|제목=동국대학교 건학이념|확인일자=2017-7-11}}</ref> 상징 동물은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 가운데 어머니 [[마야부인]]의 태몽에서 따온 [[코끼리]]이고, 상징 꽃은 [[불교]]의 진리를 뜻하는 [[연꽃]]이다.<ref name="상징">{{웹 인용|url=http://www.dongguk.edu/mbs/kr/subview.jsp?id=kr_010501000000|제목=동국대학교 상징|확인일자=2017-7-1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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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파일:DONGGUK UNIVERSITY.jpg|
=== 1906년 ~ 1953년 ===
동국대학교의 역사는 [[대한제국]]의 명진학교(明進學校)부터 시작한다. [[대한제국]] 시기에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전국의 사찰을 총괄하기 위해 창건한 [[원흥사]]가 [[1904년]] [[사사관리서]]의 폐지에 따라 기능을 잃자, [[1906년]] [[5월 8일]] 불교연구회가 주체가 돼 [[불교]] 교육만을 맡는 명진학교를 세웠다. 그 뒤 명진학교는 [[1910년]]에 불교사범학교(佛敎師範學校), [[1914년]]에는 불교고등강숙(佛敎高等講塾), [[1915년]]에는 중앙학림(中央學林)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1919년]] [[9월 30일]] [[3·1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로 폐교됐으나, [[1924년]]에 전국 사찰에서 601,425[[조선 엔|원]]을 기부하여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을 설립했고 [[1928년]]에 불교전수학교(佛敎專修學校)의 설립을 허가받아 개교했다. [[1930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로 승격됐으며 [[1940년]]에는 재단법인의 이름을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재단법인 조계학원으로 바꾸고 학교의 이름도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로 이름을 바꾸었다.<ref name="역사" /> 그 뒤 [[1944년]] [[5월 30일]] [[일본 제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제로 폐교를 당했다.<ref name="폐교">{{뉴스 인용|url=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91|제목=불교·경찰 등 각계에 ‘거목’ 우뚝|저자=최준필|날짜=2012-08-29|출판사=시사저널|언어=한국어|확인일자=2013-6-6}}</ref> [[1945년]] [[10월 27일]] 다시 혜화전문학교를 열었으며, [[1946년]] [[9월 20일]]에는 동국대학(東國大學)으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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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
=== 교육 목적 ===
[[파일:DONGGUK UNIVERSITY 학생.jpg|
동국대학교는 학술의 이론과 응용방법을 연구교수하여 [[불교]]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의 [[세계화]]를 노력해 민족과 인류 사회의 이상 실현에 기여할 지도적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ref name="교육목적">{{웹 인용|url=http://www.dongguk.edu/mbs/kr/subview.jsp?id=kr_010203000000|제목=동국대학교 교육목적 및 목표|확인일자=2016-04-03}}</ref> [[2006년]] [[5월 8일]]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교육 인프라의 확충 등에 힘써서 교육과 연구 양면에서 모범이 되는 대학, 세계가 인정하는 특색있는 대학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ref name="기념식">{{뉴스 인용|제목=동국대 100주년···8일 기념행사 개최|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5081807541&code=100100|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윤주||날짜=2006-05-08|확인일자=2016-04-0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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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내 시설 ====
;정각원
[[파일:DONGGUK UNIVERSITY Jeonggakwon(korean buddhist).jpg|
정각원은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었다. [[1910년]] [[일본 제국]]이 [[경희궁]]을 철폐하고 [[일본인]] 자제들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설립했을 때까지 남아 있었으며, [[1926년]] [[조계사]]의 본전으로 쓰기 위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각원 천정에는 [[조선 광해군|광해군]] 때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일곱 발가락을 가진 검은 빛깔의 암수 흑쌍룡인 칠조룡 있는데,<ref name="칠조룡1">{{뉴스 인용|제목=“정각원, 한국 정신사의 근간인 불교사상 선양”|url=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912|출판사=불교신문|저자=김종찬||날짜=2012-10-27|확인일자=2016-04-02}}</ref> 숫자 '7'은 [[불교]]에서 성스럽다고 여겨지고, [[용]]은 권력과 길상의 의미와 동시에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가 있으며, [[검정|흑색]]은 통합과 강직함, 고귀함의 뜻을 지니고 있어 칠조룡은 [[조선 광해군|광해군]]의 독립 자주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ref name="칠조룡2">{{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정각원 '黑 칠조룡'은 독립자주정신 상징|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96|출판사=불교닷컴|저자=조현성||날짜=2012-10-29|확인일자=2016-04-02}}</ref> 또한 정각원의 단청은 임금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의장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ref name="칠조룡1" /> 정각원은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호 ~ 제100호)|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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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파일:DONGGUK UNIVERSITY Library.jpg|
[[1906년]] [[5월]] 명진학교 설립과 함께 도서실을 설치했으며, [[1946년]] [[9월]]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가 동국대학으로 승격되면서 도서실의 명칭도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1953년]] 중앙도서관으로 개칭하며 시설을 확장했다.<ref name="도서관연혁">{{웹 인용|url=http://lib.dongguk.edu/local/html/LibraryGuidHistory|제목=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연혁|확인일자=2016-04-03}}</ref> 도서관을 신축하기 이전에는 만해관에 있었으나, [[2003년]] [[1월 13일]] 새로 지은 현재의 중앙도서관으로 옮겼다.<ref name="신축">{{뉴스 인용|제목=새롭게 변모하는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89187|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현주||날짜=2005-04-01|확인일자=2016-04-03}}</ref>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총 214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해 국내 대학도서관 가운데 8위를 기록했으며, 학생 1인당 장서수에서는 80권, 총예산 대비 도서 구입에 사용하는 비율은 0.9%를 기록했다.<ref name="도서관수치">{{뉴스 인용|제목=팔만대장경 가졌는데 도서관 장서 수 8위|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1438|출판사=불교닷컴|저자=조현성||날짜=2016-03-04|확인일자=2016-04-0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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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내 언론 ==
[[파일:DonggukUniversityNewspapers.jpg|
동국대학교의 교내 언론사로는 교육방송국과 동대신문사, 영자신문사와 대학원신문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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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상 ==
동국대학교는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된 뒤로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시켰다. 특히 [[1962년]] [[경찰대학]]보다도 먼저 세워진 경찰행정학과의 졸업생들은 여러 지역의 경찰 총수 자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청장을 포함한 간부 자리에도 포진해 있으며 각 대학의 경찰 관련 학과에서도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ref name="폐교" />
경제계에는 [[2011년]]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으로 상위 100대 기업에서 일하는 임원 가운데 64명이 동국대학교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대학교 중에서 15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ref name="기업">{{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economic/employ/view.html?cateid=1001&newsid=20110501155308864&p=sisapress|제목=대한민국 대기업 임원 그들은 누구인가|저자=이철현|날짜=2011-5-1|출판사=시사저널|언어=한국어|확인일자=2013-12-2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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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이사회 권력 쟁탈 논란 =====
주장에 따르면 영담스님은 스님은 [[조계종]]내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종회에서 야권 대표를 맡아오는 등 10여년간 동국대학교 법인 이사회를 장악하고, 학내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중앙종회는 입법기구이며 [[불교]]계의 행정수반은 총무원장이다. 중앙종회 내부에서는 국내 정치처럼 '여권'과 '야권'이 형성되어있는데, 총무원장을 배출한 계파가 여권, 그렇지 못한 계파가 야권이 되는 형식이다. [[2005년]] [[11월]], 법장 총무원장의 타계로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졌는데, '무량회'와 '무차회', '화엄회'가 연합하여 세운 연립정권의 수반이 32대 총무원장이었던 지관 스님이고, 그 반대편에는 '보림회'와 '금강회'가 연합하여 야권을 형성하였다.
그러던 [[2007년]],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이 터졌다. [[신정아]]는 영담, 영배 스님의 이사회 장악시기인 [[2005년]] [[9월]], 전공인 미술학과가 속해있는 예술대학이 아닌 교양교육원 교수로 임용되었다. 임용 당시부터 학력 위조 논란에 관해 말이 끊이지 않았지만, [[홍기삼]] 총장과 영담, 영배스님을 비롯한 동국대 수뇌부는 학력 위조 논란을 빚은 신정아를 무리하게 교수로 채용하였다.<ref name="신정아 교수 채용 주도">{{뉴스 인용|제목=영배 스님, 신씨 동국대 교수 채용 주도|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20/2007092000116.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이진동||날짜=2007-09-20|확인일자=2016-07-14}}</ref>
지난 [[2009년]]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과 영담 스님은 여권과 야권의 연대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에 당선되었다. 총무원장 선거 이전부터 동국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영담 스님은 자승스님과의 연정을 통해 확고한 동국대 이사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담 스님은 대학 개혁을 명분으로 [[2007년]] 제16대 총장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동문인 [[오영교]] 전 [[참여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2011년]] 17대 총장에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 및 [[참여정부]] [[법무부]] 차관을 영입했다. 영담 스님이 [[참여정부]] 실세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에서, 스님이 연거푸 영입한 두 명의 총장 역시 [[참여정부]] 고위관료 출신이라는 대목은 당시 영담 스님과 정권의 핵심부와의 결탁가능성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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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장 선출 및 그 이후 =====
[[파일:Donguk_university_protester.jpg|
[[2013년]] [[11월]], 자승 스님과 영담 스님의 대리전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이 재임에 성공하면서 영담 스님은 실각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2015년]] [[1월 12일]] 김희옥 총장의 연임을 지지하는 동문모임인 동국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가 보광 스님의 논문 가운데 해외 발표 5편, 국내 발표 16편 등 모두 21편에서 자체조사결과 표절 의혹이 발견됐다고 밝혔으며, <ref name="표절">{{뉴스 인용|제목=보광 스님 논문 표절 의혹 제기|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17|출판사=불교닷컴|저자=조현성||날짜=2015-01-12|확인일자=2016-04-02}}</ref> 보광 스님은 표절 의혹이 생긴 논문의 게재를 철회하면서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으나,<ref name="표절4">{{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총장후보자 표절의혹 전면 부인|url=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43713|출판사=한국대학신문|저자=김소연||날짜=2015-01-21|확인일자=2016-04-02}}</ref> 이어 [[2월 4일]]에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보광 스님의 박사논문 「신라정토사상에 관한 연구」도 표절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며 계속해서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ref name="표절2">{{뉴스 인용|제목=동국대 비대위, 보광스님 박사논문 표절의혹 추가 제기|url=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7962|출판사=BBS 뉴스|저자=홍진호||날짜=2015-02-04|확인일자=2016-04-02}}</ref>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2월 6일]] 표절 의혹이 불거진 논문 28편 가운데 최종적으로 18편이 표절이고, 그 가운데 5편은 '매우 심각한 연구부정'이라고 밝혔다.<ref name="표절3">{{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총장 후보자 보광스님 논문 18편 표절 결론|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62102061&code=940100|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혜리·김원진||날짜=2015-02-06|확인일자=2016-04-02}}</ref> 그러나 연구윤리위의 구성원들은 김희옥 총장 재임 당시, 학술부총장겸 대학원장을 지낸 박정극 위원장, 정각원장 법타스님, 공영대 학사지원본부장, 김삼동 연구진흥본부장, 최응렬 대외협력본부장등을 비롯한 주요 보직교수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해당 소속 교수들은 [[2014년]] [[12월]]에 [[김희옥]] 총장의 연임을 지지하는 교무위원 성명에 동참하는 등 위원회 구성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일었다.<ref name="연구윤리위 월권">{{뉴스 인용|제목=연구진실성위원회 심사에 진실성은 없었다|url=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6821|출판사=법보신문|저자=이재형||날짜=2015-05-01|확인일자=2016-07-08}}</ref> 또한 연구윤리위의 박정극 위원장은 피조사자의 재심 청구제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조사를 마무리지으며 본인의 자필건의서를 통해 당시 이사장 정련스님에 논문 표절로 인한 징계를 건의하여 논란이 되었다.<ref name="연구위 효력없다">{{뉴스 인용|제목=연구진실위 표절 판정 법적 효력 없다|url=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6898|출판사=법보신문|저자=이재형||날짜=2015-05-07|확인일자=2016-07-08}}</ref> 또한 [[2월 27일]]에는 동국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의 이운영 대표가 [[신용보증기금]] [[서울]] 영동지점장으로 있을 때 불법대출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으며,<ref name="불법대출">{{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총장선출 의혹 주도 이운영은?|url=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5825|출판사=법보신문|저자=최호승|날짜=2015-2-27|확인일자=2016-7-8}}</ref> [[4월 6일]]에는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장이 변호사법과 선거법 등을 위반해 법원에서 실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ref name="변호사법">{{뉴스 인용|제목=바른불교 재가모임 대표, 전과 ‘수두룩|url=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6414|출판사=법보신문|저자=권오영||날짜=2015-4-6|확인일자=2016-7-8}}</ref> [[4월 20일]]에는 동국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보광 후보 총장 선임을 반대하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ref name="교수단식">{{뉴스 인용|제목=동국대 교수들 “논문 표절 보광 스님, 총장 선임 반대”|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4202200255&code=940401|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혜리||날짜=2015-04-20|확인일자=2016-04-02}}</ref> 최장훈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4월 21일]] 새벽 3시부터 교내 조명탑에 올라가 총장 후보 추천부터 다시 할 것을 주장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지만,<ref name="고공농성">{{뉴스 인용|제목=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 고공농성 돌입|url=http://www.ytn.co.kr/_ln/0103_201504211958489143|출판사=YTN|저자=김승환||날짜=2015-04-21|확인일자=2016-04-02}}</ref> 이러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5월 2일]] 동국대 이사회에서는 보광 후보를 총장으로 선임했고, 이에 동국대 교수협의회는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의 선거 개입과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보광 후보를 총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총장 선임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ref name="반대">{{뉴스 인용|제목=동국대 교수협의회 "'표절 논란' 보광스님 총장 인정할 수 없어"|url=http://www.ytn.co.kr/_ln/0103_201505041543236905|출판사=YTN|저자=김승환||날짜=2015-05-04|확인일자=2016-04-02}}</ref> 보광 총장은 첫 출근일인 [[5월 4일]]에 최장훈 회장의 고공농성장을 찾아 조명탑에서 내려와서 대화하자고 말했다.<ref name="첫출근">{{뉴스 인용|제목=출근 첫 날, 고공농성장 찾은 보광 스님 |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11|출판사=불교닷컴|저자=조현성||날짜=2015-05-04|확인일자=2016-04-02}}</ref> 최장훈 회장은 [[6월 4일]] 오후 7시 농성을 시작한 지 45일 만에 조명탑에서 내려왔다.<ref name="농성종료">{{뉴스 인용|제목=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 45일 만에 고공농성 끝내|url=http://news1.kr/articles/?2265584|출판사=뉴스1|저자=정재민||날짜=2015-06-04|확인일자=2016-04-0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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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교수, 동문들의 보광 총장 반대 운동은 계속됐다. [[2015년]] [[5월 27일]]에는 미래를 여는 공동추진 위원회가 2학기 등록거부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김건중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은 삭발식을 가지며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ref name="삭발식">{{뉴스 인용|제목=동국대생들, 총장 사퇴 촉구 등록거부 서명운동 돌입 |url=http://news1.kr/articles/?2251212|출판사=뉴스1|저자=박현우||날짜=2015-05-27|확인일자=2016-04-02}}</ref> 또한 [[6월 4일]] 동국대 민주동문회는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총장과 문화재 절도 의혹을 받고 있는 일면 이사장, 유흥업소가 딸린 모텔을 상업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삼보 이사, 간통 및 사실혼 전력을 갖고 있는 심경 이사, 사기와 횡령의 전과가 있는 명신 이사, 특가법상 알선 수재의 전과가 있는 이연택 이사 등의 사퇴를 촉구했다.<ref name="민주동문회">{{뉴스 인용|제목=“부패 종권 먹이로 갈가리 찢겨진 동국대”|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74|출판사=불교닷컴|저자=조현성||날짜=2015-06-04|확인일자=2016-04-02}}</ref> [[10월 15일]]에는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이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11월 10일]]에는 교수협의회장 한만수 교수와 비상대책위원 김준 교수도 단식 투쟁에 나섰으며 [[11월 16일]]에는 교직원인 김윤길 대외담당관, [[11월 30일]]에는 이사인 미산 스님과 금강 스님, 법인 스님, [[12월 1일]]에는 정환민 총동창회 사무총장까지 단식 투쟁에 함께했다.<ref name="합류">{{뉴스 인용|제목=동국대를 동국사로 여기는 조계종|url=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0833.html|출판사=한겨레21|저자=홍석재||날짜=2015-12-14|확인일자=2016-04-02}}</ref>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은 50일째가 되던 [[12월 3일]] 오전 10시 몸상태가 나빠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ref name="병원">{{뉴스 인용|제목=50일째 단식투쟁 동국대 부총학생장 병원행…몸상태 악화 돼|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12/03/20151203001829.html?OutUrl=naver|출판사=세계일보|저자=박태훈||날짜=2015-12-03|확인일자=2016-04-02}}</ref> [[12월 3일]] 오후 동국대 이사회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이사회를 새로 구성한 뒤 이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이 전원 사퇴하겠다고 밝혔다.<ref name="이사진">{{뉴스 인용|제목=학내 분규 동국대 이사 전원 사퇴…"책임 통감"(종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03/0200000000AKR20151203212951004.HTML?input=1195m|출판사=연합뉴스|저자=김동규||날짜=2015-12-03|확인일자=2016-04-02}}</ref> 보광 총장은 이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2016년]] [[3월 4일]] 일면 이사 등과 함께 이사직에서 사퇴했다.<ref name="이사진2">{{뉴스 인용|제목=일면·보광 스님, 동국대 이사 사퇴|url=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1455|출판사=법보신문|저자=김규보||날짜=2016-03-07|확인일자=2016-04-02}}</ref> 하지만 보광 총장은 총장직에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파일:Protesting banners in Dongguk University.jpg|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분규는 [[2016년]] 초에 다시 시작됐다. [[2월]] 동국대 측은 총장 비판에 앞장섰던 한만수 교수를 직위해제하기로 결정했으며, 최장훈 전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고소했고, 안드레 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원 총학생회장 신정욱 등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ref name="고소">{{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사태, 2라운드 시작되나|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4143|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조영훈||날짜=2016-03-27|확인일자=2016-04-02}}</ref> 한만수 교수는 [[3월 15일]] 교원 징계위원회에서 해임 처분을 받았고, 이에 한만수 교수 측과 동료 교수들은 부당한 보복 징계라며 학교 측을 규탄했다.<ref name="해임">{{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총장 비판' 교수 해임…"보복 징계" |url=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4258&ref=nav_search|출판사=프레시안|저자=서어리||날짜=2016-03-18|확인일자=2016-04-02}}</ref> [[3월 28일]] 학생들은 학교 측의 학생 고소와 총학생회의 정당성 시비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고, 보광 총장에게 학생들의 입장을 담은 문건을 제출하려고 했으나, 총장이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못했고 즉석에서 성토대회를 열어 학교를 규탄했다.<ref name="도서관">{{뉴스 인용|제목=동국대, ‘학생들이 총장 위협’ 홍보 |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94|출판사=불교신문|저자=조현성||날짜=2016-03-30|확인일자=2016-04-02}}</ref> 그러던 가운데 자동차를 타고 학생들을 피해 학교를 나가려던 보광 총장을 발견해 학생들이 자동차를 막았고, 자동차에서 나와 학생들과 대화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ref name="도서관" /> 일부 학생들이 자동차에 올라가는 등의 과열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90여 분의 대치가 이루어진 끝에 보광 총장은 3미터 거리의 안드레 회장과 전화로 [[3월 29일]] 오후 5시에 학생들과 공개면담하기를 약속했으나, 보광 총장은 [[3월 29일]] 오후 2시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 총무원 행사에 참여한 뒤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학생 공개면담에 나오지 않았다.<ref name="도서관" /> [[4월 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성명서를 통해 학교 측에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대화할 것을 촉구했다.<ref name="민변">{{뉴스 인용|제목=민변 교육위, 동국대 질타|url=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38|출판사=불교닷컴|저자=조현성||날짜=2016-04-01|확인일자=2016-04-02}}</ref> [[4월 8일]] 오후 3시로 미루어졌던 학생 공개면담은 세부적인 진행 방식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 사실상 불발됐고, 학생 대표자들은 면담 파기와 항의 방문 취지로 오후 4시 30분에 보광 총장과 만나 면담을 가졌다.<ref name="파기">{{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총장-학생 전체면담 사실상 불발|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408_0014010665&cID=10201&pID=10200|출판사=뉴시스|저자=임종명·김지현||날짜=2016-04-08|확인일자=2016-04-09}}</ref> [[5월 4일]]에는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장을 비롯한 주요 학생 간부들로 구성된 총학생회 운영위원회에서 학내민주화와 학생참여확대를 위해 학교와의 논의 테이블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ref name="테이블">{{뉴스 인용|제목=동국대 총학생회 운영위, “논의 테이블 구성 적극 추진”|url=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2504|출판사=법보신문|저자=김규보|날짜=2016-5-10|확인일자=2016-7-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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