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키바라 다다쓰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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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kakibara Tadatsugu.jpg|섬네일|사카키바라 다다쓰구]]
'''사카키바라 다다쓰구'''({{langllang|ja|榊原忠次|さかきばら ただつぐ}}, [[1605년]] ~ [[1665년]] [[5월 14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원래 이름은 '''오스가 다다쓰구'''({{lang|ja|大須賀忠次}})였으며, '''마쓰다이라 다다쓰구'''({{lang|ja|松平忠次}})로도 불렸다. 별명은 구니마루({{lang|ja|国丸}}), 고로사에몬({{lang|ja|五郎左衛門}})이다. 관위는 종4위하, 시키부노타이호, 시종이다.
 
[[오스가 다다마사]]의 맏아들이자, [[도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인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의 적손이다. 어머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조카였기 때문에 다다쓰구 1대에 한하여 마쓰다이라 성을 쓰는 것을 허락받았다. 3세 때 아버지 다다마사가 사망하면서 [[오스가 가문]]을 상속하고 [[요코스카 번]] 6만 석 영지를 소유하였으나, [[사카키바라 가문]] 당주 [[사카키바라 야스카쓰]]에게 자식이 없어 사천왕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한 이에야스의 명에 따라 [[1615년]], [[다테바야시 번]] 사카키바라 가문의 10만 석 영지를 상속받게 되었다. [[1643년]], [[시라카와 번]] 14만 석으로 전봉되었고, [[1649년]]에 다시 [[히메지 번]]으로 옮겨가 농지 개간에 힘썼다. [[1663년]], [[호시나 마사유키]]의 추천에 의해 [[이이 나오타카]] 사후 막부의 [[로주]]직을 맡았다. [[1665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맏아들 고헤이타({{lang|ja|小平太}})가 요절하였으므로 둘째 아들 [[사카키바라 마사후사|마사후사]]가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