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태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  2년 전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북송 태조|태조]]가 [[후주]]의 장군이었던 때부터 항상 형에게 협력하고, 보조하였고, 진교의 변으로 태조를 옹립할 때도 조보(趙普) 등과 함께 중심이 되어 태조를 설득하였다.
 
태조가 사망하고 나서 아들이 후사를 잇지 않고 태종이 즉위한 것에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다만 급사를 하고 양위를 받은 것에 대해 암살설도 사라지지 않았다. 후에 태조의 장자 조덕소(趙昭)가 자살하고, 둘째 아들 조덕방(趙芳)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적장자의 황위 승계에 엄격한 북송에서는 형인 태조의 자식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준 것에 대해 항상 규탄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즉위 초 그는 자신의 계승에 이의를 제기하는 관료들을 해직하고 유배보냈다. 단 사대부와 비판을 하는 자는 죽이지 말라는 태조의 유지를 이어 그들을 처형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태종에게는 태조에 뒤지지 않는 수완이 있었고, 979년 태조가 통일하지 못하고 남긴 [[오대십국]] 중의 오, 월, 북한을 멸망시켜, 태조의 업을 잇고 중국을 재통일하는 업적을 남긴다.
 
== 황제 즉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