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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rench Gardes du Corps 1st Company Standard.jpg|thumb|upright|프랑스 왕실 근위대 제1 중대 “스코틀랜드 부대”의 군기]]
[[파일:French Garde du Corps Uniform Plate.jpg|thumb|1757년 스코틀랜드 근위대의 군복]]
프랑스 왕들은 가르드 에코세즈들을 유지하였다. 스코틀랜드 근위대들은 [[몽트로포욘|몽트로]] 다리에서의 [[용맹공 장]] 살인 당시 프랑스 왕을 보호했을 것이며, 1442년 [[가스코뉴]]의 화재에서도 구출시켜주었다.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1465년 [[몽레리 전투]]에서 [[루이 11세]]를 방어하는데 실패하였다.
 
=== 이후 역사 ===
가르드 드 에코세즈는 [[가르드 뒤 콥]] (근위대)의 선임 부대 또는 스코틀랜드 부대로서 부르봉 왕가가 끝날때까지 지속되었다. 4개의 스코틀랜드 근위 부대가 있었고 이 부대 중 하나가 프랑스 왕이 가는 곳 어디든 동행했으며, 왕이 잠을 자는 동안에는 보초를 섰고 심지어는 주방에서 왕의 책상까지 음식을 에스코트하기도 했다.<ref>Rene Chartrand, page 14 Louis XIV's Army, {{ISBN|0-85045-850-1}}</ref>
 
[[프랑수아 1세 (프랑스)|프랑수아 1세]] 통치 시기,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파비아 전투]]에서 패배 후 [[생플롱 고개]]에서 눈보라를 맞닥드렸다. 그들 중 일부가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 정착했고 그들의 후손들은 “잃어버린 [[스코틀랜드의 씨족|씨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ref>Keay and Keay (1994) p. 639</ref>
 
16세기부터 스코틀랜드 근위대의 보충 병력들은 주로 프랑스인들이였고 스코틀랜드인들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