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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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출===
1605년 [[교황 레오 11세]]가 선종하자 보르게세 추기경은 [[체사레 바로니오]]와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등 유력한 후보자들을 제치고 교황 바오로 5세가 됐다. 당시에는 추기경들 간에 당파 투쟁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립적인 성향이었던 그가 교황이 되기에 이상적이었다. 매우 엄격하고 단호한 성격이었던 그는 외교관이라기보다는 교회의 특권을 최대한 변호한 법률가였다. 교황으로서 그가 내린 첫 번째 지시는 로마에 체류하고 있는 주교들을 그들의 교구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일찍이 [[트리엔트 공의회]]는 모든 교구장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 머물러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었다.<ref name=Loughlin/> 교황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오로 5세는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교황청으로부터 독립을 지키려고 하는 베네치아를 굴복시키기로 결심했다.
 
===신학===
바오로 5세는 로베르토 벨라르미노가 그의 명령에 따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고수하거나 변호하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인 1616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만났다. 태양중심설 자체를 아예 강단에서 가르치지 말라는 명령까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벨라르미노가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단지 태양중심설을 고수하거나 변호하지 말라는 지시만이 있었다. 이 편재 내용은 벨라르미노와 만난 것에 대한 무성한 소문에 대해 갈릴레오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명시적으로 작성되었다.
 
===시성과 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