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악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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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안정호 방남 부분은 추후 예술단 공연시 제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요망
선우향희, 차영미, 정수향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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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단의 시작 ==
=== 창단 배경 ===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라는<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54 김 총비서 '음악은 나의 첫사랑'] - 통일뉴스</ref> 유명한 인생지론을 갖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 한다. 정치가 없는 음악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고같으며,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라고 규정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cp_art_view.html?artid=20091020162240A 北김정일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 - 경향신문</ref> 나아가서 북측의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김정일이 "인류 정치사상 처음으로최초로 음악정치라는 새로운 경륜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빛나게 현실화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찬양하였다.<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77637 북한 매체 "인류정치사상 처음으로 음악정치 구현"] - 데일리NK</ref> 다시 말해 북한의 음악은 유일사상과 부자세습 체제의 구축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 목적은 인민들에게 공산주의에로의 투쟁을 고무시켜 주고 계급교양 및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있다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민경찬 교수는 설명하였다.<ref>[http://www.sac.or.kr/magazine/s_m_view_a.jsp?mag_id=1062 북한음악의 이해] - 민경찬 음악평론가 </ref>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정치적인 해석으로 모란봉악단의 결성은 김정일시대의 음악정치를 김정은시대에 계승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하였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484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 모란봉악단 앞세운 '열린 음악정치'] -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ref> 다시 말해 김정일시대의 음악정치가 이른바 조선식 전자음악을 연주한다는 [[왕재산경음악단]](1983년 창단, 그후 왕재산예술단으로 변경)과 [[보천보전자악단]](1985년 창단) 그리고 조선식 팝스오케스트라인 [[은하수관현악단]](2009년 창단)으로 대표된다면 김정은시대의 음악정치는 2012년 모란봉악단으로 그 화려한 시작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시기를 음악정치의 시원으로 보는데<ref name="lsa_mbb" />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혁명음악의 전통을 이룩하여 주체음악예술의 일대 개화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ref name="lsa_mbb">{{저널 인용|author1=이선애|author2=|title=김정은 시기 모란봉악단의 공연활동에 관한 연구|date=2014-12|publisher=인제대학교 대학원}}</ref> 또한 음악정치라는 용어는 2000년 2월 평양의 [[인민무력성]] 집회에서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 집회에서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을 비롯한 인민군 고위 장성들은 토론에서 "지금 우리 식의 특이한 음악정치가 펼쳐지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ref>[http://office.kbs.co.kr/tongil1/archives/4153 음악정치] - KBS 북한백과</ref> 즉, 음악정치는 [[김정일]]이 음악을 사상이나 총대처럼 중시하고중요시하고 음악을 통해음악으로 전체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그 위력으로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왔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독재는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고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통제와 폭력은 물론 대중의 취향을 동일화하는 전략도 취하는데 음악이 독재자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며, 음악을 통해 독재자는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획일화하는 한편 집단적 정체성에 강한 에너지와 열정을 부여한다는 것이다.<ref name="m_song">{{서적 인용|author1=민은기|author2=|title=독재자의 노래|date=2012|publisher=한울|isbn=978-89-4604-622-1}}</ref> 또한 그들은 음악가들에게 독재 체제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작품들을 만들도록 요구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해 대중의 가치와 의식을 조종한다고 민은기 서울음대 교수는 그의 저서 《독재자의 노래》에서 설파하였다.
 
=== 파격적인 첫 시범공연 ===
[[김정일]] 시대에 도입되기 시작한 전자악기는 모란봉악단에서 더욱 새롭게 등장하였다. 모란봉악단은 첫 무대에서 전기바이올린 3명과 전기첼로 1명의 현악 4중주단을 중심으로 전기기타/베이스 각 1명, 드럼 1명, 색소폰 1명, 피아노 1명, 전자건반악기(신디사이저) 2명의 연주자들과 가수 6명으로 이루어진 공연을 선보였다. 모란봉악단 공연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 화려한 조명과 무대장치, 현대적 전자악기, 여성단원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등 기존의 북한 공연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첫 무대였던 2012년 7월의 시범공연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공산주의 폐쇄국가인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 인형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원쑤'의 나라인 미제국주의 상업영화 '[[록키]]'의 영상을 무대 대형 스크린에 보여주고 주제곡까지 연주하였다. 미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단속하고 통제했던 북한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였다. <ref name="joins_kang">[http://news.joins.com/article/19276211 '모란봉'은 김정은 음악정치 전위대] - 중앙일보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f>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행보는 주민들에게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젊고 활기찬젊은 새로운 지도자상,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는활용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말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7/09/0200000000AKR20130709180700014.HTML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등장 1년…활약상 띄우기] - 연합뉴스</ref>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공연에 대하여 "공연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 편성, 연주 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들을 기성 관례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혁신하였다"고 평가했으며<ref name="tongil_d">[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9227 모란봉악단, 파격공연으로 '불문율'을 깨다] - 통일뉴스</ref> 또한 노동신문은 "당의 음악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 가는 모란봉악단은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대진군을 힘있게 선도해 나가는 제1나팔수다"라고 보도하였다.<ref>[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3703 북한 연구 | 김정은 ‘악단정치’의 비밀] - 월간중앙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f>
 
[[파일:Mbb_logo.jpg|thumb|right|모란봉악단의 로고.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휘감는 오선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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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1일 노동신문은 1면 전면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그이 없인 못 살아'라는 신곡 악보를 김정은 사진과 함께 컬러로 실었는데, '우리의 운명 김정은 동지, 그이 없으면 우린 못 살아'라는 비장한 가사로 끝나는 노래 악보에는 '절절하게 부르라'는 주문이 쓰여 있다. 또한 노동신문은 다음 날에는 1면에 이 노래에 대한 반응을 보도하였는데 노래가 김정은을 지칭하는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하늘처럼 굳게 믿고 사는 천만군민의 민심을 반영했다고 주장하였다.<ref>[http://nk.joins.com/news/view.asp?aid=13050534 하루아침에 북 히트곡 된 '그이 없인 못 살아'] - 중앙일보 북한네트</ref> 결론적으로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음악정치, 그 선봉에서 최고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2017년 4월 북한의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제국주의의제국주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반동적인반동적 사상 문화가 제국주의제국주의의 침략의침략 주역으로 등장했다고나섰다고 설명하며강조하며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색깔 혁명' 즉, 정권교체 혁명을 거론하며거론하고 제국주의의제국주의 사상적 침투가 심각한 사회정치적 혼란과 파국적 위기를 가져왔다고 강변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29/0200000000AKR20170429065700014.HTML 北매체 "제국주의 사상·문화는 침략주역…공격전 벌여야"] - 연합뉴스</ref> 2012년 7월 모란봉악단의 첫 공연에서 미 제국주의 상업영화 주제가와 그 캐릭터 인형들을 선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기조가 아닐 수 없다.
 
=== 악단의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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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범공연에서 악단 멤버들은 모두 드레스 차림으로 공연하였다. 악단의 핵심 현악 4중주단은 1부에서 어깨 또는 등이 노출되는 화려한 보랏빛 드레스를 입었으며, 2부에서는 무릎 위 짧은 검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현악 4중주단을 제외한 나머지 연주자들은 1, 2부 동일하게 흰 드레스가 공연의상이었다. 6명의 가수들은 화려한 한복으로 시작하여 무려 4종류의 서로 다른 드레스를 번갈아 입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후 모란봉악단의 공연의상은 군복으로 바뀌게 된다. 예외가 있었다면 2012년 7월 28일 공연의 2부, 2013년 1월 1일 공연 그리고 2014년 3월의 공연뿐이었다.
 
모란봉악단은 공연 성격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군복의상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모란봉악단 부단장 김운룡에 의한다면 악단의 전체 성원들이단원들이 군복을 입도록 [[김정은]]이 '은정어린 조치'를 내려준 것이라고 한다.<ref>[http://changesk.blogspot.com/2014/05/blog-post_27.html 김정은위원장, 몸소 피아노에 범창까지 하며 모란봉악단 지도] - 한호석의 개벽예감</ref> 하지만 여러 군사제복을 입어도 비교적 짧은 스커트와 하이힐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머리 모양 역시 초기와 다르게 변화를 보여주게 된다. 첫 공연에서 가수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나 2013년 1월 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모두 짧은 단발머리로 바뀌게 된다.
 
[[파일:Mbb_20120728.jpg|thumb|right|2012년 7월 28일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의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을 연주하는 모란봉악단의 현악 4중주단(왼쪽부터 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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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어린이의약품 지원 건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던 SBS 오기현 PD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악단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선우향희'를 최고의 스타로 여긴다고 한다. 이른바 북한의 아이돌인 것이다. 예전에는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 (가수)|전혜영]]이나 '반갑습니다'의 이경숙 등 가수들이 최고 인기였는데, 오 PD는 가수도 아닌 연주자가 스타로 떠오른 것이 이례적이라고 부연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601033.html 북한의 걸그룹 '모란봉악단' 뜨면 삼촌팬 들썩] - 한겨레</ref>
 
2014년 3월 일반에게 공개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관심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동신문]]은 공연 첫날 5천석5,000석 규모의규모 [[4.25문화회관]]이 초만원을 이뤘다고 보도한 데 이어이루었으며,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열풍으로 수도 평양이 흥성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가예술공연국으로는 매일같이 공연 관람과 관련한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보도하였다.<ref>[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5/story_n_5025637.html 북한에도 '소녀시대'가 있다] - 허핑턴포스트</ref> 또한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맞아 노동신문은 "전국을 들었다 놓고있는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 노래포성은 문학예술의 감화력과견인력과 견인력이감화력이 얼마나 큰 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며 "당은 문학예술 부문의 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모란봉악단의 창조정신,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306 北,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개막...'모란봉악단 정신·기풍 배우자'] - 통일뉴스</ref> 모란봉악단은 문예부문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모범이 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모리 토모오미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2015년 10월 13일 숭실대에서 열린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모란봉악단, 그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을 중심으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음악 정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모란봉악단은 그 형식과 내용 모두가 김정은의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며 "악단이 창설 후 곧바로 북한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예술영역은 물론 사회 분위기나 유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메시지로서 악단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ref>[http://news1.kr/articles/?2456205 北 모란봉악단은 존재 자체가 김정은 메시지] - News 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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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향희는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김원균 평양음대]]를 졸업하고 2009년 [[만수대예술단]] 산하 [[삼지연악단]]에 입단하였다. 평양음대 재학 시절인 2008년 제18차 [[2.16예술상]] 개인경연 부문의 수상자이며,<ref>[http://uriminzokkiri.com/itv/index.php?ppt=vmusic&rtype=hit&no=540&rpagenum=9 제18차 "2.16예술상"개인경연 입상자들의 공연중에서] - 우리민족끼리TV</ref> 2011년 1월 [[삼지연악단]]의 신년축하공연에서는 선우향희만 유일하게 솔로 연주의 무대(바이올린 독주 사라사테 - Zigeunerweisen)를 갖기도 하였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lWNFVwrnz8g 삼지연악단 2011년 1월 신년축하공연 선우향희 바이올린 독주] - YouTube 공연 영상</ref> 2012년 모란봉악단의 악장 겸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노동신문은 2012년 7월 9일 자에서 [[김정은]]이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을 관람한 직후 공연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악장인 선우향희동무가 정말 잘한다고 치하하였다"고 보도하였다.<ref>[http://www.kgforum.kr/down/%5bKGF2016%5dInternational_Conference_on_Unification_and_North_Korea_(15th)(ko).pdf 김정은 시대 음악정치의 연속성과 혁신성 - 모리 토모오미] - 한반도 국제포럼 2016, 통일 북한학 학술대회 자료집 p457</ref> 또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악단 리더 선우향희의 훌륭한 디렉팅을 칭송하였다고 전했다.<ref>[http://www.nydailynews.com/news/world/north-korea-pop-sensation-group-moranbong-music-group-article-1.1357928 North Korea's five-part girl band] - NY Daily News</ref><br />
하지만 선우향희는 모란봉악단을 담당하는 북측 선전선동 부서의 선택으로부터 차츰 멀어지는 듯 보였다. 음악의 주 선율을 담당하는 제1바이올린 연주자 그리고 악장(concertmaster)으로서 악단의 성공에 분명한 기여를 하였으나 악단내에서 파격적인 4명의 공훈배우 칭호 수여, 단원들에 대한 당 및 국가표창과 군사칭호 수여 그 어느 것도 선우향희는 받지 못하였다. 또한 2014년 봄의 몇 차례 공연에서 빠지고 다시 들어오고를 반복하다가 결정적으로 2014년 5월 19일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9월 3일 모란봉악단의 신작음악회는 선우향희의 마지막 무대였다. 한편 공개되지 않은 무대인 2015년 9월 쿠바 외교사절들을 위한 공연에 잠시 출연하기도 하였다.<br />
그러나 놀랍게도 거의 3년 만인 2017년 5월 그리고 7월의 두 차례 공연에서 선우향희는 제1바이올린 주자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17년 7월 9일의 공연에서 선우향희는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낀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결혼반지인 것으로 추측되며 바이올린 연주에 방해받지 않기 위하여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금까지는 기혼자로 보이기에 의심치 않는 가수 리옥화를 제외한다면(2014년 9월 3일 공연), 모란봉악단의 어떤 멤버도 반지를 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br />
2014년 9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선우향희가 떠난 이후에 누가 악장을 이어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선우향희는 2017년 5월 공연부터 다시 모란봉악단에 복귀하였지만, 이전과 다르게 악장의 지위는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며 중견 가수 리옥화·김옥주를 제외하면 단원 모두의 계급이 소위로 통일된 점에서 공식적으로 악장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2012~2014년 시절 선우향희는 음악의 주선율을 책임지는 제1바이올린 담당으로서 다양한 바이올린 솔로를 보여주었지만 2017년 5월 다시 돌아온 이후 제1바이올린으로 그전과 같은 많은 바이올린 독주부를 연주하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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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홍수경(전기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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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차영미(전기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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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미는 선우향희가모란봉악단 모란봉악단을이전에 떠난[[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 이후에는 제1바이올린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다. 차영미는차영미에게 있어 2014년 5월은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조선중앙TV의 뉴스 화면에 의하면 악장 선우향희가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전국예술인대회의 즈음하여객석에서 눈만 깜박거리며 가만히 앉아있었을 때 차영미는 악장 선우향희를 제치고 높은 토론에연단에 참가하였으며올라 예술인대회 토론자로 나섰으며, 또한 김정은이 얼마나 자세하게 모란봉악단에 관심과 지도를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을내용을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하여 밝히기도 하였다. 역시 모란봉악단전국예술인대회의 이전에는공연에서 선우향희는 무대에 오르지 못하였으며 대신 차영미는 드디어 제1바이올린으로 활약하였다. 그 당시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이 김정은에게 달려가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김정은]]에서 바이올린특별히 차영미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선우향희가 모란봉악단을 떠난 이후에 대부분의 공연에서 차영미는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차영미는 2014년 9월 그리고 2015년 10월~2016년 2월의 공연에서 빠졌으며 또한 2017년 9월부터 2018년 1월 현재까지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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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유은정(전기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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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width:4em;" align="center"|정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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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향은 이전에 왕재산예술단의 가수로 활동하였다. 2012년정수향은 7월류진아·라유미처럼 독창 공연부터무대에 2018년빈번히 1월서지도 최근않고 공연까지악단의 비교적주요 꾸준히메인 무대에보컬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란봉악단의 가수들 센터에 보통 위치하며 꾸준하게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를 오르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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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width:4em;" align="center"|박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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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7일 ([[인민극장]])** : 쿠바공화국 국가대표단을 환영하는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축하공연. 선우향희가 잠시 공연에 참여하였고 이 공연은 오리지널 현악 4중주단(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이 연주한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 10월 11일 ~ 18일([[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70돐경축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차영미는 무대에 오르지 않음. 현악 3중주(홍수경, 김은하, 유은정).
* 12월 12일 ~ 14일 (중국 북경) : 중국 북경에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북경 극장에서의 리허설 후에 공연은 취소되고 모란봉악단은 철수하였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리허설을 하며 공연 내용에 대해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북중 간의중국과 마찰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였다.<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1407&num=107494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에서 드러난 김정은의 ‘조급성’] - 데일리NK</ref>
 
=== 201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