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 (147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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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우의정]]이 된지 이틀만에 체직되고, 강등되어 [[보국숭록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대간에서는 그의 자급을 승급한 것조차 옳지 않다고 계속 공격하였고, 이후 그는 [[김굉필]], [[조광조]]의 문인들에 대해 악감정을 품게 된다. 이들은 [[윤임]]과 가깝게 지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윤원형]], [[윤원로]], [[윤춘년]] 등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윤임]](尹任)등 대윤 일파가 득세하자 [[대윤]]은 이기를 재상직에 부적합 인물로 보고 다시 [[병조판서]]로 강등시켰다. 한편 그는 인종이 즉위하기 직전 인종의 앞날을 걱정한 [[이언적]]의 발언을 [[윤원로]] 등에게 알렸다.
 
[[이언적]]은 그에게 '중전(문정왕후)이 동궁(東宮, 인종)을 매우 박대하니 놀라운 생각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언적의 이 말은 이기 외에는 들은 사람이 없었는데 이기가 곧 [[윤원로]]를 찾아가 누설하였으므로 [[윤원로]]는 [[이언적]]을 원망하여 드디어 소원하게 대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시 소문이 났고, 이기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다. 한편 [[윤원로]]는 이기를 덕스럽게 여겨 '이기는 [[이학]](理學)에 정통한데 [[중국]]에서 찾아보아도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하였다. 그 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와 [[윤원형]], [[윤원로]]의 후원으로 다시 관직에 복귀, 그해 [[3월]] [[판중추부사]]가 되었다가 [[3월 9일]] 행[[형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 10일만인 [[3월 19일]]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
 
한편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싸움에 참여하기 싫었던 그는 병을 핑계로 경연 등을 회피하였다. [[조선 명종|명종]]실록에는 '매양 몸이 불편하다고 핑계하고 다른 곳으로 나가 누워 있으면서 참석하여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실리기도 했다.<ref>명종실록 1권, 명종 즉위년(1545 을사 / 명 가정(嘉靖) 24년) 7월 7일(정묘) 3번째기사 "윤인경 등이 인종이 명종을 해치려 한다고 한 윤원로에 대한 치죄를 청하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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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치]]
{{Col-3}}
*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
* [[정난정]]
* [[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