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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적인 문제 이외에 간혹 한 사람의 뜻으로 인해 천장된 사례도 있었는데, [[조선 중종|중종]] 때 [[김안로]]가 자신의 정적이었던 [[정광필]]을 제거하기 위하여 [[장경왕후 (조선)|장경왕후]]의 [[희릉 (조선)|희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내용인 즉슨, ‘산릉 조성 작업 도중에 암반이 나왔는데, 암반을 파낸 자리에 국모를 안장한 것은 지기가 끊어진다.’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암반이 나왔으나, 중종은 당시 길흉을 점쳐서 괜찮다 하였기에 암반이 나온 자리에서 몇 자 아래로 옮겨 썼던 것이다. [[김안로]]는 천장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그의 뜻대로 천장을 하게 되었다. 그 뒤 김안로 측에서는 관련자였던 [[정광필]]에 대한 처벌을 상소하였고, 결국 정광필은 [[유배]]형에 처해졌다.<ref>{{서적 인용 |저자=박시백 |기타= |제목=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중종실록|날짜=2006 |출판사=휴머니스트 |id=ISBN 978-89-5862-105-8|쪽=163 ~ 166}}</ref>
 
그 뒤 중종의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는 [[장경왕후 (조선)|장경왕후]]와 나란히 묻혀 있는 중종을 [[조선 성종|성종]]의 [[선정릉|선릉]] 옆으로 천장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그 옆에 묻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새로 천장된 [[선정릉|정릉]]에서는 장마 때면 물에 잠기곤 해서 문정왕후는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정릉과 멀리 떨어진 [[태강릉|태릉]]에 묻히게 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박시백 |기타= |제목=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인종·명종실록|날짜=2006 |출판사=휴머니스트 |id=ISBN 978-89-5862-143-0|쪽=118}}</ref>
 
== 제례 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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