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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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4년 아버지 임사홍과 관련된 추문을 극복하고 장원급제를 하기도 하였다. 야사에 따르면 [[임희재 (1472년)|임희재]]는 집 병풍에다가 [[연산군]]을 [[진시황]]에 비기며 그의 폭정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 [[연산군]]이 어느 날 임사홍의 집에 찾아갔다가 이 병풍을 보고 격노했다. 그리고 임희재를 죽이겠다고 하자 임사홍이 "그렇지 않아도 이놈이 불초하여 제가 먼저 처치하시라고 아뢰려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ref name="choi157"/> 아들이 죽던 날,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잔치를 벌이고 흥청거리며 놀았다.<ref name="choi157"/> 그날 저녁에야 [[연산군]] 일행이 떠나간 뒤 세인의 이목을 피해 대성통곡했다 한다.
다른 야사에서는 임희재가 아버지의 잘못을 간하자 연산군에게 그가 참소하여 죽이게 했다 한다.<ref name="choi157"/> [[최용범]]은 이 설의 신빙성을 의심한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비정한 아버지, 인간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보인다.<ref name="choi157"/>'고 평하였다 그러나 실록에는 [[임희재]]가 [[무오사화]]에 희생된 [[이목 (1471년)|이목]]의 도당으로서, [[이목 (1471년)|이목]]의 집을 수색했을 때 시국을 비판하는 [[임희재 (1472년)|임희재]]의 편지가 나왔기 때문에 희생된 것으로 적혀 있다.<ref name="choi157"/>
임사홍 자신도 [[유자광]]과 함께 [[이극균]]의 친구였다 하여 처형당할 뻔하기도 했다.<ref name="choi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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