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 깅리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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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보수주의적 공약 입안을 주도하여 인기를 모아 공화당이 하원 선거에서 40년 만에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가 주도한 공약으로 공화당의 승리는 미국의 변혁을 이끈 깅리치 혁명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그는 새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어 [[1995년]] 1월 40년만의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동안 클린턴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와 그 자신의 윤리적인 문제로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대립으로 [[1996년]] 하원 선거에서는 어려움이 예상되었으나, 9석만 잃고 다수당 지위를 유지, 하원의장으로 계속 재임했다. 그 후 ‘[[모니카 르윈스키|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논란이 계속되자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법적으로 심판하자는 논리로 탄핵을 추진하고 이를 [[1998년]] 11월 중간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의석 5석을 잃고 다수당 지위는 유지했으나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그의 개인적인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영향력을 급속히 잃었고 곧바로 하원의장직 사임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12월 20일]], 하원을 통과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349630 클린턴 성추문...발단서 탄핵소추까지] [[연합뉴스]] [[1998년]] [[12월 20일]]</ref>. 깅리치는 [[1999년]] [[1월 3일]], 하원의장과 의원직을 동시에 내놓고 20년 간의 하원의원 생활을 마감하였다. 정계 은퇴 후 깅리치는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보수적인 견해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의 우세를 보며 공화당의 개혁을 촉구했으며,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201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출마했으나 고려하기도 했다경선에서 [[미트 롬니]], [[릭 샌토럼]], [[론 폴]]에 이어 4위에 그쳤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