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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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의 관계====
외교에 있어서 바오로 5세의 강경한 자세는 [[잉글랜드]]의 온건파 가톨릭 신자들의 상황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1606년 7월 9일 그는 [[제임스 1세]]가 즉위한지 3년이 지나서야 그의 등극을 축하하는 친서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작년 11월에 있었던 [[화약음모사건]]에 대해서 유감을 나타내는데, 왜냐하면 잉글랜드인들은 해당 사건을 교황의 첩보원들이 개입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교황은 친서에서 제임스 1세에게 소수의 잘못으로 대다수 죄 없는 가톨릭 신자들까지 고통받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바오로 5세는 잉글랜드의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군주에게 복종하도록 권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제임스 1세가 자신의 신민들에게 요구한 충성 선서에는 17세기 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양심상 동의할 수 없었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몇주 후 바오로 5세는 1606년 9월 22일과 1607년 8월 23일 두 차례에 걸쳐 제임스 1세의 충성 선서 내용을 크게 규탄했다. 하지만 교황의 규탄은 단지 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분열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잉글랜드와의 관계에 있어서 또 다른 문젯거리는 벨라르미노 추기경이 잉글랜드의 수석사제 [[조지 블랙웰]]에게 그가 교황에 대한 순명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꾸짖은 서신을 보낸 것이었다. 이 서신의 내용은 제임스 1세의 신학 에세이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며, 벨라르미노는 곧 잉글랜드 왕과 언쟁을 주고받았다.
 
[[파일:0 Basilique Saint-Pierre - Rome (2).JPG|thumb|right|300px|성 베드로 대성전의 외관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