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그레고리오 1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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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당시 그는 이미 67세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건강 상태가 좋지 못했다. 따라서 교황청에서 그를 돕기 위해 그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힘있는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레고리오 15세는 자신의 조카인 25세의 청년 [[루도비코 루도비시]]가 그에 걸맞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족벌주의]]의 위험을 감수하고 교황으로 즉위한지 사흗날에 그를 추기경에 서임했다. 같은 날, 교황의 어린 동생 [[오라치오 루도비시]]는 교황군을 이끄는 [[교회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sfn|Ott|1910}}
 
[[Image:Galeriapapal GregorioXV.jpg|thumb|right|150px|교황 그레고리오 15세와 그의 조카 [[루도비코 루도비시]] 추기경]]
루도비코는 자신을 등용해 준 교황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톨릭 백과 대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루도비코는 자기 가문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교회의 복지 문제에 있어서 뛰어난 능력과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교황을 위해 충심으로 헌신했다고 한다.{{sfn|Ott|1910}} 그레고리오 15세는 공작령 두 곳을 확보한 다음 1621년 자신의 동생 오라치오를 로마 귀족 및 [[피아노로마노]] 공작에 임명했으며, 1622년에는 조카 루도비코 루도비시가 [[콜론나 가문]]으로부터 구입한 [[차가롤로]] 공작에 또 다른 동생을 임명했다. 루도비코 외에 또 다른 조카인 [[니콜로 루도비시]]는 1632년 3월 30일 피옴비노 공작 및 이솔라델바 영주의 상속녀와 혼인해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