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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1세 (프랑스)|프랑수아 1세]] 통치 시기,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파비아 전투]]에서 패배 후 [[생플롱 고개]]에서 눈보라를 맞닥드렸다. 그들 중 일부가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 정착했고 그들의 후손들은 “잃어버린 [[스코틀랜드의 씨족|씨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ref>Keay and Keay (1994) p. 639</ref>
 
16세기부터 스코틀랜드 근위대의 보충 병력들은 주로 프랑스인들이였고 스코틀랜드인들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었다. [[스코틀랜드어]]에서 유래한 지휘의 특정 단어가 그대로 유지되었다.<ref>Liliane and Fred Funcken, page 14 ''L'Uniforme et les Armes des Soldats de la Guerre en Dentelle'', {{ISBN|2-203-14315-0}}</ref> 1632년에 [[헌틀리 후작 조지 고든|엔지 백작]]은 프랑스의 스코틀랜드 연대를 재건을 시작했다.<ref>David Stevenson, "Gordon, George, second marquess of Huntly (c. 1590–1649)",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online edn, May 2006 [http://www.oxforddnb.com/view/article/11037 accessed 19 Nov 2010]</ref> 일부 부대들이 자주 통합 되면서 정확히 어떤 부대가 ''가르드 에코세즈''라는 칭호를 가졌는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으며, 이러한 부대에는 [[존 헵번 경]], [[어빈 백작|제1대 어빈 백작 제임스 캠벨]] (이후 [[로버트 모레이 경]]), [[제임스 더글러스 경]]이 이끄는 부대였다.<ref>Steve Murdoch and Alexia Grosjean, ''Alexander Leslie and the Scottish Generals of the Thirty Years' War, 1618-1648'' (London, 2014), pp.65, 108, 154, 161, 172</ref> 스코틀랜드인들이 기록된 일부 사료들에서 비록 ''더글러스 부대'' (Regiment de Douglas)라 언급하지만 간단하게 ''가르드 에코세즈''라는 명칭으로 썼다.
 
[[루이 15세]] 시기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21명의 장교와 330명의 병사들로 이뤄졌고, 마지막 활동된 것은 1747년 7월 1일 [[라우펠트 전투]]에서 루이를 호위한 것이였다. 이 전투와 다른 전투에서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다른 프랑스의 중기병들이 들고 다니는 검 대신에 강철 칼집이 있는 [[클레이모어]]를 휴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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