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사랑방 (일반)/2018년 제5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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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위키 문서에는 '예수회의 협조'라는 목차명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불허하는데 세스페데스가 조선에 몰래 가서 사목한게 '예수회의 협조'라 보기엔 어렵고, 고니시의 군대가 예수회가 보낸 군대도 아니죠. 가토의 군대는 불교 신자가 많았으니, 그 전쟁은 불교의 조선 침략이 되나요? 같은 논리를 쓰면, 신미양요는 개신교의 조선 침략이군요[[사:Gabrielus333|Gabrielus333]] ([[사토:Gabrielus333|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7:40 (KST)
::소제목의 '협조'가 문제가 된다면 연관, 관련, 이런 다른 용어로 교체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출처로 제시한 논문에 따르면 예수회는 바테렌 추방령으로 약해진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히데요시의 조선침공에 적극 협조하였습니다..그래서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같은 가톨릭 영주들이 최전방에 서게 되었다고 논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또 세스페데스가 조선에 몰래 가서 사역하였다고 하시는 데 위 김상근의 논문에 따르면 세스페데스는 종군신부의 자격으로 조선에 출정하였습니다.. 신미양요까지 개신교의 침략이라 억지 쓰실 일은 아니라 봅니다. 그렇게 쓰고 싶으면 가브리엘님이 그렇게 쓰시던지요..-- [[사:신비한|신비한]] ([[사토:신비한|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7:50 (KST)
::신미양요를 그렇게 주장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주장은 당연히 부당한 결론이고, 병사들이 개신교 신자이고 개신교 선교사가 타고있었다고 한들 개신교 교단이 그 사태를 일으킨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인용하신 논문(<예수회의 초기 일본 선교정책 비교>)이 발리냐노의 협조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저의 오독임을 인정하고, 이 부분은 제가 직접 그 문서에 반박 편집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읽어보지도 않은 서간(단지 자체적 정보력으로 내용을 눈치챘을 뿐인)을 마닐라 주교에게 보냈다는 존슨의 저술이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킬 당시 일본의 중국 공격 계획 역시 예수회 신부에 의해 작성되었다"로 적히는 등의 태도는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산체스가 히데요시를 부추긴 것이 아니고, 산체스로부터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의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며, 산체스는 부산이 아니라 마카오 이야기를 했으며, 나고야가 아니라 마닐라를 이야기 했다면, 그건 임진왜란 문서에 쓰일 서술이 아닙니다. 물론 코엘로와 발리냐노의 건은 논문을 읽어보니 충분히 그렇게 읽을수도 있으나(이것은 제가 해당 문서에 직접 반박을 달겠습니다), 산체스의 서간 등까지 무분별하게 임진왜란과 엮인 것은 가톨릭(혹은 예수회)를 비판하겠다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자료를 인용했다는 시선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전쟁에 대한 서술 뿐만이 아니라, Liturgy께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신비한님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현존하는 모든 주류 종교와 종파를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서술할 수 있습니다.[[특수:기여/39.121.101.25|39.121.101.25]] ([[사토:39.121.101.25|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8:12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