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1세 바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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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년]]부터 [[1514년]]까지 [[웁살라 대학교]]에서 재학했다. [[1518년]]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 국왕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덴마크군의 포로로 잡혔지만 [[1519년]]에 도피했고 [[달레카를리아]](Dalecarlia)에 귀환했다.
 
[[1520년]] 11월11월에는 스톡홀름을 점령한 덴마크 군대가 스웨덴스웨덴의 귀족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스톡홀름 피바다]]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구스타브는 스웨덴을 탈출한 뒤부터 저항 운동에 앞장섰다.<ref>《월드인포:예술을 꽃피운 유럽 5 - 스웨덴 편》/교원/41쪽 </ref> [[1521년]] [[달라르나]] 지방으로 귀환한 이후에는 농민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일으킨 농민 반란이 성공하면서 스웨덴 의회로부터 스웨덴의 [[섭정]]으로 임명되었다.
 
[[1523년]] [[6월 6일]]에는 스웨덴 의회로부터 구스타브 1세 에릭손 바사로 스웨덴의 국왕이 됨과 동시에 스웨덴의 독립을 선언하여 마침내 [[칼마르 동맹]]이 해체되었다. 스웨덴에서는 매년 6월 6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