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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춘추 시대]] 당시 [[제 (춘추 전국)|제나라]](齊)의 [[제 환공|환공]](桓公)이 건설하였으며, [[전국 시대]]에는 [[위 (전국)|위나라]](魏)에 속했고, [[서문표]](西門豹)가 [[황허 강]]과 [[장허 강]]의 물을 이용한 관개 사업을 진행하여 번창하였다. [[전한]]에서는 시대에는 [[위군]]의 치소가 있었다소재하였다.
 
[[후한]](後漢) 말기부터때에 이르러 [[화베이 평원]]에서 군사적으로군사적·경제적으로 중요한핵심적인 도시가 되었으며,
후한의[[기주]] 군벌일대에서 할거한 하나인제후 [[원소 (후한)|원소(袁紹)]]의 근거지가 근거지로되었고, 삼았다.이후 원소의
세력을 흡수한 [[조조]] 또한 근거지로 삼아 후한 멸망 때까지 세력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비록 후한의 뒤를 이은 [[위 (삼국)|조위]]에서는 [[낙양]]을 수도로 삼았으나, 이후에도 업은 중심도시의 기능을 여전히 수행하였다.
하지만 원소가 조조에게 패하여 202년에 죽고, 그 원소의 아들인 [[원상|원상(袁尙)]]이
업에서 조조에게 저항하였으나, [[건안]] 9년([[204년]])에 [[조조|조조(曹操)]]에 의해 함락되었다.
이후 업은 조조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210년에는 [[동작대]](銅雀臺) 등의 화려한 궁전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조조가 213년 위공(魏公)에 오르자 업은 수도로 결정되었다. 이어 216년 조조는 위왕(魏王)에 올랐고 수도인 업에 왕궁을 지어 생활하였다.
 
220년에 [[조비|조비(曹丕)]]에 의해 [[위 (삼국)|조위(曹魏)]]가 건국된 이후에는 수도를
[[낙양]](洛陽)으로 옮겼지만, 정치 ·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남북조 시대#화북|북조]](北朝) 시대에 다시 수도가 되었고,
[[흥화]] 2년([[540년]])에 [[고환 (북제)|고환]](高歡)이 새 궁전을 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