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천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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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갑작스런 붕어를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듯 항간에서는 [[고토바 천황|고토바 상황]]의 원령 혹은 지엔(慈円)의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사인을 뇌좌상으로 억설한 것도 있다.)
 
사후 지금의 [[교토 부교토부]] [[히가시야마 구]]에 위치한 쓰키노와 능({{lang|ja|月輪陵}})에 안장되었다. 시조 천황은 황자나 황녀를 두지 못하고 붕어하는 바람에, 모리사다 친왕(고다카쿠라인)의 혈통은 끊어지고 말았다.
 
원래 이 계통은 죠큐 3년(1221년)에 있었던 조큐의 난에서 막부에 패한 고토바 상황의 혈통 이외의 사람에게 황위를 잇게 한다는 가마쿠라 막부의 방침 아래 당시 10세에 불과했던 고호리카와 천황의 즉위에서 시작되었지만, 친아버지 모리사다 친왕이나 천황의 두 친형도 이미 승려로 출가한 뒤였던 데다 즉위 2년 뒤에는 모리사다 친왕마저 죽으면서 나이 어린 천황만이 남겨진 '황통 단절'의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이 상태는 고호리카와 천황이 시조 천황이 될 황자를 얻으면서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듯 보였지만, 황자를 더 두지 못한 채 고호리카와 상황이 23세에 붕어하고 또다시 당시 4세이었던 시조 천황만이 남겨지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구게 사회에는 '황통 단절'의 위구심이 늘 따라다녔고, 구게들 가운데는 시조 천황 생전보다 그 붕어의 꿈을 꾸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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