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마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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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t.Asama (From saku city).jpg
|사진_설명 = 아사마산
|위치 = [[군마 현군마현]] [[아가쓰마 군]] [[쓰마고이 촌]]<br />[[나가노 현]] [[기타사쿠 군]] [[가루이자와 정]], [[미요타 정]]
|산맥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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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마 산'''({{llang|ja|浅間山|아사마야마}})은 [[군마 현군마현]] [[아가쓰마 군]] [[쓰마고이 촌]]과 [[나가노 현]] [[기타사쿠 군]] [[가루이자와 정]], [[미요타 정]]의 경계에 있는 높이 2,542m의 [[활화산]]으로 때때로 활동을 보인다. 1783년 대분화 때는 큰 피해를 빚었다. 산허리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남쪽 기슭에는 가루이자와 고원이 있다. [[2009년]] [[2월 3일]]경 화산이 폭발하였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 이 폭발 당시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도쿄까지 퍼져가기도 하였다.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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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5년]]([[덴무 천황]] 14년:[[아스카 시대]])([[일본서기]])
* [[1108년]]([[가쇼 (1106년)|가쇼]](嘉承) 3년, [[덴닌]](天仁) 원년:[[헤이안 시대]]) 덴닌(天仁) 대규모 분화. 대량의 분출물을 수반한 대분화. [[고즈케노쿠니]](上野国) 일대에 분출물이 쌓여 경작지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쥬유키]](中右記)에 기록되어 있다. 부흥을 위해 개발한 경작지를 호족이 사유 영지화하여, 이윽고 [[장원]]으로 발전했다. 이 분화는 고즈케노쿠니의 장원화(荘園化)를 촉발한 계기가 되었다.
* [[1783년]] [[9월 1일]]([[그레고리력]])([[덴메이]](天明) 3년 8월 5일(음력) 대분화. 용암류와 화산쇄설류가 발생, [[군마 현군마현]] 방향으로 흘렀다. 나가노하라마치(長野原町)나 쓰마고이무라(嬬恋村) 간바라(鎌原)지역 등 아가쓰마 강(吾妻川) 유역을 중심으로 1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浅間焼泥押). 이 용암류는 화구로부터 흘러나온 용암이 직접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분출한 용암이 화구 부근에 퇴적되어 굳었다가 다시 흘러내린 화산쇄설성용암(火砕成溶岩)으로 생각되고 있다. [[에도시대]]의 덴메이 연간에는 도호쿠 지방에서 약 1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덴메이 대기근]]이 일어났다. 같은 덴메이 연간에 아사마 산이 덴메이의 대분화를 일으킨 것으로 인해, 아사마 산의 영향으로 기근이 일어났다는 인식이 장기간 있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덴메이 대기근은 덴메이 대분화 이전에 시작되고 있었으며, 또 대기근 이전에 [[아이슬란드]]에서 [[라카기가르 화산]](Lakagígar, Laki)의 대분화에 의해 대량의 [[에어로졸]]이 방출된 사실로 인해, 기상 조건상으로도 아사마의 분화보다는 라카기가르 분화의 영향이 강했다고 여겨진다. 라카기가르의 에어로졸은 프랑스에서도 흉작의 원인이 되었고,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당시의 화산재에 대해서는 런던에서도 기록으로 남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