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루베 철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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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인 본선의 전 구간이 뚫리기 전까지 산인 지방에서는 [[마이즈루 시|마이즈루]]와 [[사카이미나토 시|사카이]](지금의 사카이미나토)를 잇는 철도 연락선의 운행이 이루어져 왔다. 처음에는 힌카쿠 철도가 이 연락선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철도원이 힌카쿠 철도를 국유화하면서 연락선의 운영까지 그대로 인수했던 것을 산인 본선이 뚫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12년 3월 31일을 끝으로 폐지했다<ref>{{서적 인용|author=후루카와 다쓰로|title=철도 연락선, 100년의 자취 (鉄道連絡船100年の航跡)|publisher=[[세이잔도 서점]]|edition=2차 증보판|date=2011-06-08|isbn=4-425-92141-0|pages=33}}</ref>. 그 때까지 연락선의 소요 시간을 포함하여 교토와 이즈모이마이치를 오가는 데에는 24시간 19분이 걸렸으나, 산인 본선 열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소요 시간은 절반 수준인 12시간 49분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총 운임도 4엔 61센에서 2엔 84센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아마루베 철교의 개통에 대해 당시 [[일본의 총리|내각총리대신]]이었던 [[사이온지 긴모치]]는 "(산인 지방의) 인문과 산업 환경을 개선하고…… (중략) 앞으로 산인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어 줄 일"<ref group="주">원문은 근대 문체 [[일본어]]이다. "{{lang|ja|人文ト産業ト両ナガラ其ノ面目ヲ改メ(中略)山陰将来ノ殷盛期シテ待ツベキモノアラン}}"</ref>이라며 극찬했다<ref>{{서적 인용|title=日本国有鉄道百年史|volume=6|publisher=[[일본국유철도]]|date=1972-10-01|pages = 117 ~ 118}}</ref>.
 
산인 지방의 산업은 사카이를 중심으로 한 수운 교통에 의존해 있었으나 산인 본선이 완전히 이어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특수를 거치면서 철도 수송의 점유율이 커지게 되었고, 산인 지방의 산업과 사회에 여러 영향을 끼쳤다. 우선 [[이즈모타이샤]] 참배나 [[기노사키 온천]]을 비롯한 온천 지역으로의 관광객들이 늘어났고, 돗토리 현에서는 제지용 원목이 4배, 기타 목재가 3배, [[무명]]이 2배, [[일본식 종이|종이]]가 1.3배 정도로, 여러 품목의 생산량이 늘어났다. 또한 [[호키 국|호키]] 소를 비롯하여 산인 지방에서 키우는 소들의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철도의 개통은 이촌향도 현상도 가속화시켜 철도 개통 이후 산인 지방 도시들의 인구 증가율은 낮아졌다. 《돗토리 현사》(縣史)에 따르면 돗토리 현은 철도의 개통으로 게이한신 지방의 공산품들을 구입하는 시장이자 제1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전원적인 지역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ref>{{웹 인용|url=http://www.pref.tottori.lg.jp/dd.aspx?menuid=80240 |title =제12회 현사(縣史)에 관한 소식|author=오가와 아쓰시 |publisher=돗토리 현 공문서관|date=2007-04-12 |accessdate = 2011-07-02}}</ref><ref>{{서적 인용|title=鳥取県史 近代第三巻経済編 |publisher=[[돗토리 현돗토리현]] |date = 1969-04-30 |pages=748 ~ 755}}</ref>.
 
=== 보수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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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논의와 진전 ===
[[파일:Amarube.kouji.jpg|thumb|200px|right|새 교량이 공사 중이던 시기에 찍은 사진]]
1986년에 일어난 열차 추락사고 이후 운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열차 운행 휴지나 지연이 자주 발생하였고 ([[1994년]]부터 [[2003년]] 사이에만 120번의 열차 정지와 84번의 운행 휴지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연선 지역 주민들의 통근·통학이나 경제 활동에 큰 지장을 주게 되자<ref name="shippai"/><ref name="kasumikanko-2">{{웹 인용|url=http://www.kasumi-kanko.com/modules/amarube/index.php?id=2|title=余部鉄橋の歴史その2|publisher=가스미 관광 협회|accessdate=2010-09-27}}</ref><ref name="tottori-zigyou">{{웹 인용|url=http://www.pref.tottori.lg.jp/dd.aspx?menuid=87077|title=余部橋りょう架替事業|publisher=돗토리 현 기획부 지역 만들기 지원국 교통정책과|accessdate=2010-09-27}}</ref> 이러한 문제들의 해소를 위해 [[1991년]] [[3월]] [[돗토리 현돗토리현]]과 효고 현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아마루베 철교 대책 협의회'가 세워지기에 이르렀다<ref name="hyogo20060901-1">{{웹 인용|url=http://web.pref.hyogo.lg.jp/wd05/wd05_000000041.html|title=余部鉄橋の定時性確保対策(1)|publisher=효고 현|date=2006-09-01|accessdate=2010-09-27}}</ref><ref name="Tamura_kannmatsu">《아마루베 철교 이야기》 권말 부록 자료</ref>. 대안으로 새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검토되었으나 기존 역의 이전 등으로 많은 비용이 들기에 반려되었다<ref name="hyogo20060901-1"/>. 대신 옛 교량에 방풍벽을 설치하는 안이 [[1994년]] 3월부터 검토되었다. 그러나 풍동(風洞) 실험 등을 통해 보강한 방풍벽을 설치함으로써 강풍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는 있지만, 옛 교량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안 또한 반려되었다. [[2001년]] [[11월 22일]] 서일본 여객철도는 지역 당국 쪽에 새 교량을 건설하는 것을 제의했다<ref name="Hyogo_proposal_pdf">{{웹 인용|url=http://web.pref.hyogo.lg.jp/contents/000016267.pdf|title=余部鉄橋定時性確保対策のための新橋梁の形式選定に関する提言|publisher=아마루베 철교 정시성 확보 대책을 위한 새 교량 건설 검토회|date=2003년 9월|format=PDF|accessdate=2010-09-27}}</ref><ref name="hyogo20060901-1"/><ref name="hyogo20060901-2">{{웹 인용|url=http://web.pref.hyogo.lg.jp/wd05/wd05_000000043.html|title=余部鉄橋の定時性確保対策(2)|publisher=효고 현|date=2006-09-01|accessdate=2010-09-27}}</ref><ref name="Tamura_pp117-118">《아마루베 철교 이야기》, 117쪽 ~ 118쪽.</ref>.
 
그리고 [[2002년]] [[7월 25일]]에 열린 아마루베 철교 대책 협회의 임시총회에서 지역 당국은 새 다리를 건설하는 안의 추진을 결정했다<ref name="Tamura_p122">《아마루베 철교 이야기》, 122쪽.</ref>. 같은 해 [[12월]]에는 '아마루베 철교 정시성 확보를 위한 새 교량 검토회'를 설치하여 대학 교수, 서일본 여객철도, [[일본 철도종합기술연구소]], 지방 당국 관계자 등이 새 교량에 관해 올라온 각종 안건에 대해 검토했다<ref name="Tamura_p130">《아마루베 철교 이야기》, 130쪽.</ref>. 그 결과 경제성이 높고 공사에 필요한 운행 휴지 기간이 비교적 짧은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라멘(Rahmen) 구조'로 다리를 짓는 안을 채택하여 [[2003년]] [[9월 1일]] 효고 현 지사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소견서를 제출했다<ref name="Hyogo_proposal_pdf"/><ref name="hyogo20060901-2"/><ref>《아마루베 철교 이야기》, 153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