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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홍'''([[1931년]] ~)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 대표팀과 [[한국 프로 야구|프로 야구]] [[MBC 청룡]], [[롯데 자이언츠]] 등의 감독을 맡았던 야구인다.
'''어우홍'''([[1931년]] ~) 은 한국의 [[야구감독]], [[야구해설자]]이다.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동래중 (현재 [[동래고]])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서 활약했다. [[1949년]] 제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회 첫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선수시절에는 1루수와 투수를 맡아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실업야구에 몸담아, [[한국전력]]등에서 활약했고 1960년 부터는 선수생활에서 은퇴하고 [[부산상고]]를 시작으로 야구감독 생활을 하여, 이후 [[경남고]], [[한국전력]], [[동아대]]등을 맡았다. 1982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서울에서 벌어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주로 부산지역의 팀들을 지도하였기 때문에 "부산야구의 대부"로 불리기도 한다.
'''어우홍'''([[1931년]] ~) 은 한국의 [[야구감독]], [[야구해설자]]이다.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동래중 (현재 [[동래고]])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서야구 선수로서 활약했다. [[1949년]] 제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회 첫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선수시절에는 1루수와 투수를 맡아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실업야구에실업 야구에 몸담아, [[한국전력]]등에서 활약했고활약했다. 1960년 부터는 선수생활에서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부산상고]]를 시작으로 야구감독감독 생활을 하여, 이후 [[경남고]], [[한국전력]], [[동아대]]등을 맡았다. 1982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서울에서 벌어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주로 부산지역의 팀들을 지도하였기 때문에 "부산야구의 대부"로 불리기도 한다.
 
프로야구계에프로 야구계에 뛰어드는 것을 꺼렸으나 MBC의 삼고초려로 1984년 [[김동엽]]에 뒤이어 [[MBC 청룡]] 감독을 맡았다. 이후 1985년까지 감독을 맡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아 다시 [[김동엽]]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1988-1989년에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을 맡았으나, 팀의 에이스 투수였던 [[최동원]]의 계약을 둘러싼 어수선한 팀분위기때문에팀 분위기 때문에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년의계약 기간 계약기간만을2년만을 채우고 교체되었다.
 
이후 일선에 나서지 못했지만, 야구인들의 친목모임 [[일구회]]을 창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후 90년대 후반에는 케이블TV에서케이블 야구중계TV에서 야구 중계 해설을 맡기도 했다.
 
[[김응룡]]이 부산상고 감독시절 그의 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