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파진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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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진 해전'''([[1597년]] [[음력 9월 7일]])은 [[어란포 해전]]에 뒤이어 벽파진에서 왜군의 소규모 함대를 격파한 해전이다.
 
이 전투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후 2번째 해전이다. 서쪽으로 이동하던 왜선 55척 중 호위 적선 13척이 나타나자, 한밤중에 이순신이 선두에서 지휘하여 벽파진([[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적선을 격퇴시켰다.

이 전투로 왜군은 조선 수군이 확실히 13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순신의 복귀도 확인한다.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나중에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의 존재를 확인하나 첩보는 이미 보고받은 상태였다.
 
이 전투 역시 이순신이 왜군을 [[명량해협]] 쪽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