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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의 기원은 [[1946년]] [[9월 19일]]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한 유명한 유럽에 관한 연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설에서 [[윈스턴 처칠]]은 유럽에 [[유엔]]과 유사한 기구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1950년 5월 9일 [[장 모네]]가 구상한 [[석탄]] 및 [[철광석]] 채굴을 위한 [[프랑스]]-[[독일]](서독) 간의 공동 사무소 설치에 관한 계획을 당시 프랑스의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던 [[로베르 쉬망]]이 쉬망 선언(Déclaration Schuman)을 통해 공식적으로 건의함으로써 최초로 유럽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중앙 유럽 국가 간에 토론되기 시작하였다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5월 9일은 [[유럽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1951년 4월 18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국은 석탄 및 철광석 채굴에 관한 조약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 ECSC) 체결함으로써 유럽 내의 시장권을 거의 장악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기존 회원국인 [[서유럽]]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중앙유럽]] 국가들이 가입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저렴한 중앙유럽의[[중앙유럽]]의 노동력이 서유럽으로[[서유럽]]으로 몰려오면서 서유럽 국가들은 실업난을 겪고 있으며, 중앙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서유럽으로 빠져나가 국가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연합은 경제 통합을 넘어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과정으로서, [[2009년]] [[12월 1일]] 발효된 [[리스본 조약]]에 의해, 순번의장 제도가 폐지되고 상임의장인 [[유럽 이사회 의장]] 자리가 신설되어, [[2009년]] [[11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에서 27개국 정상이 만장일치로 반롬푀이 총리를 초대 상임의장에 선출되어, [[2009년]] [[12월 1일]]부터 [[헤르만 반롬푀이]]가 의장을 맡고 있다.<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388966.html 첫 ‘유럽 대통령’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 : 유럽 : 국제 : 뉴스 : 한겨레<!--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091120003440&subctg1=&subctg2= 초대 ‘EU 대통령’ 관리자형 택했다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12037471 <nowiki>[`EU 초대 대통령`에 롬푸이] 小國(소국) 우파 대통령·強國(강국) 좌파 외교장관…유럽다운 절묘한 타협<!-- 봇이 따온 제목 --></nowiki>]</ref> [[2012년]]에 [[독일]]과 [[프랑스]] 등 EU의 주요국들이 유럽연방의 직전 단계에 해당되는 새로운 EU 통합안의 골격을 내놓았다. 하지만 권고안이 되었고 EU 통합에 부정적인 영국은 처음부터 논의에서 빠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368583 ‘하나의 유럽’ 밑그림 나왔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