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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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m 모바일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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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초기 ===
이봉창은 [[1900년]] [[8월 10일]] 한성부경성부 [[용산구|용산방]] [[원효로|원정2정목]](元町二丁目)에서 이진규(李鎭奎, 다른 이름은 이진구(李鎭球) 또는 심규(沈奎))와 그의 부인 밀양 손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형 이범태는 노동자로 활동했고, 한때 소, 소가죽 등의 브로커로 일했다고 한다. 아버지 이진규에게는 두 명의 첩이 있었는데, 서모 주간난(朱干蘭)에게서는 서제(庶弟)인 이봉준과 이종태가 태어났다. 이후 [[충청남도]] [[공주시|공주]]와 [[전라북도]] [[전주시|전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이봉창의 선대는 [[경기도]] [[수원시|수원]]에서 거주하였으며 아버지 이진규는 [[농업]]을 계승하여 중류층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ref name="소년기1">도왜실기 (김구 지음, 엄항섭 엮음, 범우사, 1989) 37~38</ref> 자신의 신문조서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건축청부업과 우차운반업을 하고 있었고, 당시 건축수요의 증대로 인해 자신이 자산을 모은 신흥[[자본가]]였다고 한다.<ref name="배경식">기노시타 쇼죠,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배경식 저, 너머북스) p25-32</ref> 김구의 '도왜실기'에는 농업을 하던 아버지의 토지가 철도건설 계획지점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땅을 일본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생계를 꾸려나갈 길이 없어지자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 거주하였다<ref name="소년기1"/>고 기록 되어 있으나, 이는 진위가 의심스럽다. 그의 아버지는 44년에 사망하고 형 이범태와 조카딸들은 해방직후에도 생존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