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케이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  3년 전
[[파일:Ancient Roman road of Tall Aqibrin.jpg|250px|섬네일|오른쪽|안티오키아에서 하르키스로 이어지는 로마 가도.]]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 왕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는 아버지 안티오코스를 기리고자 16개의 도시를 세웠는데, 안티오케이아도 그 가운데 하나로써하나로서 [[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기원전 300년]]에 도시의 토대를 닦았다. 안티오케이아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로써 헬레니즘 세계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도시였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로마에 멸망당한 뒤에도 안티오케이아는 [[근동]]에서 [[알렉산드리아]] 버금가는 제국 제3의 도시로써 번영을 누렸다. [[초기 기독교]] 시대 [[사도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포교 거점이 된 도시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땅이었다.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이 거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며<ref>《사도행전》 11장 26절</ref>(《마태오 복음서》에는 서시리아에서 성립되었다는 설도 싣고 있다) 훗날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아가 국교로 삼은 뒤, 안티오키아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과 함께 기독교 5대 교구의 지위를 얻고 총대주교좌가 설치되어, 시리아 지역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써 번영을 이어갔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 가운데 한 명으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되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또한 이곳에서 태어났다. 현재에도 [[동방 정교회]]에서는 [[안티오키아 그리스 정교회]]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의 이름을 유지하는 교회가 여럿 있는데, 실제 활동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나 다른 도시로 옮겨간 상태다.
[[1516년]]에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 도시를 정복하였고, 오스만 제국령 알레포 주의 한 지방도시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의 위임통치에 들게 된 시리아에 편입되었는데, 투르크계 주민이 시리아에서 분리운동을 일으키고 [[1939년]] [[터키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터키 하타이 현의 현청 소재지로써소재지로서 [[안타키아]]라고 불린다.
 
== 각주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