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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11월부터 1894년 12월까지 [[청나라]] 체류 시기의 일기에는 자신의 혼인과정,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위생 상태, 김옥균의 암살전후 상황, [[상하이]]의 [[조선]] 총영사관 직원들 및 [[민영익]] 등 상하이 체류자들의 활동 상황, [[영국]]과 유럽 열강의 [[청나라]] 공략에 대한 간단한 소문들, [[청일전쟁]]의 경과 및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만주, 베트남, 러시아 등의 정세 등이 언급, 기록되어 있다.
 
[[1895년]] [[1월]] 귀국 이후 [[1907년]]까지 국내활동 시기의 일기에는 국내 정치 사회 분위기와 갑오경장, 을미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의 전후 사정과 당시 부패하고 경직된 관리들의 태도, [[명성황후]] 암살 사건 전후의 정치상황,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수행원 참석관계의 여행과정 및 [[독립신문]] 편집 참여와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의 인권운동, 국권·민권운동의 전말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895년]] 일기에는 주로 국내 관료들의 무능함과 부패함, 표리부동한 처신과 행동 등이 담겨져 있고, 언문을 사용할 것을 상주하자 나는 언문을 배우지 못했다는 [[김홍집]]외 일부 고관들의 반발, 개화파와 민권운동에 대한 모함을 하는 일부 관료들에 대한 의견이 담겨 있다. [[1896년]] 이후의 일기에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무고하는 [[황국협회]] 및 [[조병식]] 을 비롯한 정부 대신들에 대한 비판, [[조선 고종|고종]]에 대한 경멸과 [[대한제국]] 황실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과 의심을 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을미사변]] 당시의 일기와 이후의 일기에서 왕비 암살에 [[유길준]]을 비롯한 조선인 협력자들이 가담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윤치호 자신의 친 고모가 죽었는데 진심어린 애도, 슬픔보다는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해서 장례식 때 슬픈 척 하는 것, 사촌 [[윤치소]]의 아들 [[윤원선]]의 결혼식을 윤치소의 형제들이 화려하게 한 것과 초청자 명단에 [[박영효]]의 이름을 집어넣은 것, 그밖에 쓸데없는 조선사회의 사치스러운 [[결혼식]]과 사치스러운 [[장례식]]들에 대한 윤치호의 평도 담겨져 있다.
1900년대의 일기에는 지방관리의 부패상과 [[개신교]], [[천주교]] 선교사들의 월권행위와 권력남용, 철도부설권의 해외 매각 문제, 민중의 동태와 무기력, 위생관념 결여, 그리고 러일전쟁의 경과와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과 당시 고위층의 움직임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부터 [[1915년]] 사이의 일기는 실전되었는데, [[윤치호]]가 [[105인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압수당하여 돌려받지 못했다.
 
또한 [[한일 합방]] 조약 이후 [[조선 고종|고종]]을 측근에서 모시던 신하들의 석연찮은 행동과 시중에 돌던 [[고종 독살설]]을 [[한진창]]으로부터 전해들은 일 및 먼 친척인 [[윤덕영]] 등에 대한 비판, 글을 모르는 조선인 고위 관리들, 자신의 삼촌 [[윤영렬]]도 군 장성이었지만 학식이 짧았던 것, 사촌 동생 [[윤치오]]의 낭비벽 및 그가 [[이상재]], [[한진창]] 등에게 빚을 지고 파산한 일, 민족 독립 선언서를 작성한 [[이광수]]나 [[최남선]]이 글은 짓지만, 민족 대표자 서명에 서명을 거절한 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최남선]]이 1930년대 후반 앞장서서 총독부 학무국에 협력한 일, 남성은 바람을 피우면서도 여성에게만 정절을 강요한 일, 남편에게 부당하게 이혼당한 [[나혜석]], [[박인덕]] 등의 편에 섰던 일, [[박인덕]]이 [[적극신앙단]]의 [[신흥우]]와 가깝게 지내자 [[박인덕]]에 대한 동정심을 버리고 비판조로 변한 것 등도 두루 수록되어 있다.
 
1900년대의 일기에는 지방관리의 부패상과 [[개신교]], [[천주교]] 선교사들의 월권행위와 권력남용, 철도부설권의 해외 매각 문제, 민중의 동태와 무기력, 고위층의 부패와 타락한 지식인들, 무능력한 중류층, 조선 사회의 위생관념 결여, 그리고 러일전쟁의 경과와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과 당시 고위층의 움직임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부터 [[1915년]] 사이의 일기는 실전되었는데, [[윤치호]]가 [[105인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압수당하여 돌려받지 못했다.
 
[[1916년]]에서 [[1943년]]까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일기에는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차별 정책과 세금 인상, 구한국 화폐 이용 금지, 3·1 만세 운동과 일부 민족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 [[1920년]]대 총독 교체 이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는 과정,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진주만 공습 당시 자신의 입장과 국내외 지식인의 동향, 독립운동가 및 반체제인사들의 활동사항, [[조선총독부]]의 대응, [[조선총독부]]의 역차별과 총독부 관리들의 실적 올리기식 정책 등과 한국인의 어려운 생활상, 해외에 망명한 한국인 교포들에 대한 일본 헌병, 중국 마적, 한국인 독립운동가, 공산당 빨치산 등에 의한 이중삼중의 약탈, 그가 [[1920년]]대부터 맡던 각종 기독교단체 및 기독교 단체 사람들의 관계와 활동사항, 특히 YMCA 청년회 서울지부 및 YMCA중앙기독교청년회 본부 일과 기타 교육사업·사회사업 문제, 그밖에 [[적극신앙단]] 사건 등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