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브래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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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독은 미국 [[프렌치 인디언 전쟁]] 때 지휘관이 되어 영국군 정규병 2개 연대를 이끌고 1755년 2월 19일, 버지니아에 상륙했다. [[4월 14일]], 브래독은 알렉산드리아 위원회에서 식민지의 지사들과 회견하고 프랑스를 공략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브래독은 전군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공격을 작전을 세웠다. 매사추세츠의 윌리엄 셜리 지사가 나이아가라 요새(현재 뉴욕)를 공격하고, 윌리엄 존슨 장군이 크라운 포인트(세인트 프레드릭)를, [[로버트 멍턴멍크튼]] 대령이 펀디 만에 있는 보세수르 요새(현재 뉴브런즈윅)를, 브래독 자신은 [[오하이오 강]]에 포크스에 있는 [[듀케인 요새]](현재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근처)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브래독은 행정 혼란과 부족한 물자를 조달한 몇 달의 준비 끝에, 엄선한 부대를 데리고 출발했다. 이 부대에는 자원 장교로 당시 23세의 [[조지 워싱턴]]도 있었다. 브래독은 아직 프랑스군과 동맹하지 인디언 부족으로부터 징병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척후로 8명의 밍고족만 고용했다. 그 지역의 인디언, 특히 유명한 [[델라웨어 족]]의 신가스 추장은 중립 상태였다. 유럽​​의 양대 강국에 끼여, 인디언들은 패자에게 붙을 수는 없었다. 브래독의 성공 여부가 그 선택을 좌우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