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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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실업 야구 [[우리은행|한일은행]] 야구 팀의 선수로 활동하다가 [[1982년]] [[KBO 리그]]의 출범에 따라 [[서울특별시|서울]]을 연고지로 삼은 [[MBC 청룡]]에 원년 멤버로 입단하였다. 선수 시절에는 호쾌한 타격을 보여주던 공격형 [[포수]]였다. 원년 개막전에서 4-7로 뒤지던 7회말 2사 1·3루에서 동점 3점 홈런을 쳐 경기의 흐름을 돌리는 데 한 몫했지만, 10회말 1사 2·3루 (볼카운트 3볼)에서 선수 겸 감독이었던 [[백인천]]의 볼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무시한 채 상대 [[투수]] [[이선희 (야구인)|이선희]]의 유인구를 치는 바람에 3루 주자였던 [[김인식 (1953년)|김인식]]을 횡사시켜 [[백인천]] 감독의 눈 밖에 나버리게 되었다.(자신은 땅볼로 진루) 이후 팀 내 주전 [[포수]]로 자리잡지 못하게 되었고 [[1984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현금 1천 5백만 원의 조건으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다.
 
[[1986년]]에는 [[해태 타이거즈]]의 두터운 [[포수]]진과 노장이 되어 버린 나로이나이 때문에 [[김종윤 (1957년)|김종윤]]과 함께 대전, 충남을 연고지로 삼은 신생 팀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유승안은 [[1987년]]에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1989년]]에 4번 타자로서 [[KBO 타점상|한국프로야구 최다타점상]]과 골든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하면서 빛이 발하게 되었다. [[1991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반대로 아들 [[유원상]]은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가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되어 아버지와는 거꾸로 팀 커리어를 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