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번째 줄:
 
평북 연변 출신으로 1958년 동해안으로 대남 침투하던 중 울릉도 서북 해상에서 경찰에 검거된 우용각은 체포뒤 해군 정보부에서 조사를 받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대전교도소에 특별사동 독거실에 수감됐다. 29세의 나이에 수감된 뒤 71세인 1999년 대통령 특별사면되었다. 1990년대초 [[빨치산]]이었던 미전향 장기수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상에 알려져 민주화실천운동가족협의회 등 인권단체들이 어떤 혐의로 어떻게 재판받았는지 조사하기 위해 면회를 신청하기도 했으나 허락받지 못했지만 함께 수감됐던 재야인사 등을 통해 사상전향서 제출을 거부하여 사면대상에서 제외돼 왔으며 고문 후유증과 중풍으로 인한 근육마비 증세로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1998년 3월 [[뉴욕타임스]]는 `40년동안 단 한 번의 면회도 없이 독방에 수감돼 있는 양심수'라고 우용각을 소개하면서 석방을 촉구하고 국제 앰네스티도 석방을 우리 정부에 건의했었다.<ref>국민일보 사회 | 국제] 1999-02-22 / 고승욱 </ref>
 
== 같이 보기 ==
*[[이석기 (1962년)|이석기]]·이상호·조양원·[[김홍열]]·김근래·홍순석·한동근 : [[이석기 사건]] 수감자로 앰네스티에서는 내란선동죄로 수감된 사람들까지 양심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