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다르 1세 (세르비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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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03|6|14|1876|3|6}}
|사망지 = [[세르비아 왕국]] [[베오그라드]]
|매장지 = [[베오그라드]] [[성 마르카 교회 (베오그라드)|성 마르카 교회]]
|정당 =
|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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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6월 11일]] 이른 아침 흑수단은 베오그라드 왕궁으로 쳐들어가 시종들을 살해했고 국왕 부부와 총리 [[니콜라 파시치]]는 침실의 비밀 벽장으로 숨었다. 한참 후 이젠 안전하다고 생각한 드라가 왕비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를 들은 흑수단이 다시 쳐들어와 수색을 펼쳐 국왕 부부를 찾아냈다.
 
국왕 알렉산다르와 드라가 왕비는 총에 맞아 암살되고 시체는 절단되고 배가 갈려 2층 창문에서 정원 비료 더미 위에 던져졌다고 하며 현재알렉산다르 베오그라드의1세 세인트국왕과 마크드라가 교회의마신 토굴에왕비의 묻혀시신은 있다베오그라드 [[성 마르카 교회 (베오그라드)|성 마르카 교회]]에 안치되었다. 이후 흑수단의 추대로 페타르 카라조르제비치가 페타르 1세로 즉위하면서 오랫 동안 원수 지간이던 오브레노비치 가문과 카라조르제비치 가문이 알렉산다르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카라조르제비치 가문은 정권을 쥐게 되었다.
 
{{전거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