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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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원 ==
{{참조|친일}}
“친일파”라는 단어는 [[임종국 (1929년)|임종국]]이 1966년 출간한 《친일문학론》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이 책에서, 친일(親日)은 “일본과 친하다”라는 뜻으로 정의되었으며 친일파라는 명칭은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사회지도층 세력인 '''부일배''' 표현 대신에 사용된 것이다. 부일(附日)은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일본과 친하다라는 개념을 넘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의도를 적극적으로 도운다는 의미이다. 출간된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친일이라는친일파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게 되었으며, {{출처|날짜=2017-01-17|[[왜색]]을 비롯한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의 대중들에게는 부일보다 친일이 더 나쁜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되었다.}}
 
단순히 [[일본 문화]] 전반이나 [[일본인]]을 좋아하거나 이에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을 친일파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기준과 대상 ==
친일파는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필요성을 주장한 [[지일파]](知日派)나 학일파(學日派), 경제·문화면에서 일본으로부터의 극복을 주장한 [[극일파]](克日派)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단순히 [[일본 문화]] 전반이나 [[일본인]]을 좋아하거나 이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인 [[친일]]과도 구별된다.
 
친일 행위 및 친일파의 기준, 범위나 대상 설정 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자와 경술국치 당시 관직자 만을 대상으로 하는가, 창씨개명자 및 소극적인 친일행위자, 민족개량주의자 등도 포함하는가의 여부 등 그 쟁점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체제 하에서 수동적인 친일 행위를 한 사람은 친일파로 볼 수 없으며, 생존을 위해 소극적으로 협력한 정도는 이른바 반민족행위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또다른 이들은 이 역시 결국은 똑같은 친일행위라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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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일제강점기 당시 부를 쌓은 계층과 친일파는 겹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기에 대부분이 인민재판이나 강제수용 등으로 처리가 됐으나<ref>홍민 저, 『북한의 친일파 청산』(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2년 참조</ref>, 일부 친일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공훈배우이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최승희]]<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846437 홍천군 "친일논란 `최승희춤 선양사업' 잠정 중단"], 2010년 12월 31일 작성 [[연합뉴스]]</ref>,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교육문화성 부상을 지내고 공훈 인민배우 칭호의 [[황철]], 정치인 [[리승엽|이승엽]] 등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내 서열 10위였던 [[장헌근]], [[김정제]], [[조일명]] 등 공산주의 국가 수립에 동조하는 친일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에 참여하였다. 또한 공군 장교의 경우, 일본 제국군, 만주군 출신의 친일파들을 등용하여 [[조선인민군]]에 편입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