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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는 80년대 독일 내 스래쉬 메탈의 확산에 이바지하였고, 외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에는 기존의 스타일을 답습하기보다는 꾸준히 실험을 거듭하며 평단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팬들에게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초기의 스타일로 복귀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다.
 
== 역사 ==
=== 1980년대 ===
크리에이터의 전신은 1982년에 결성된 스쿨 밴드 'Tyrant'이다. 당시 멤버는 밀란트 "밀레" 페트로차(보컬, 기타), 롭 피오레티(베이스), 위르겐 "벤토르" 라일(드럼) 이었다. 이듬해 밴드 이름을 'Tormentor'로 변경하고 인디 레이블 노이즈 레코드(Noise Record)과 계약을 맺은 후 첫 번째 데모 'Blitzkrieg'을 발매한다. 이 앨범과 1984년에 발매한 두 번째 데모 'End of the World'에서는 [[슬레이어]]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며, 인디 레이블 Noise Record에서 발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 이름을 크리에이터(Kreator)로 변경하고, 1985년 정식 데뷔 앨범 'Endless Pain'을 발매한다. 이 앨범 역시 슬레이어의 주로 영향이 많이 느껴지나, 데스, 블랙 메탈의 면모까지 확인할 수 있다. 녹음 작업에는 총 10일이 소요되었다.
예상외로 판매실적이 호조를 보이자 레이블은 두 번째 앨범 'Pleasure to Kill'을 내도록 강요한다.
노이즈 레이블은 또다시 차기 앨범 작업을 강행하고, 1990년 10월에 5집 Coma of Souls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전작과 비슷한 성향을 유지하며, 'People of the Lie'가 인기를 얻으며 전작들과 비슷한 판매고를 기록한다. 또한, 최초로 남미에서 공연을 한다.
 
=== 1990년대 ===
1990년대 초 스래쉬 메탈 신은 변혁을 맞이한다.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가 스래쉬의 본질보다 상업성에 치중하는 반면, 크리에이터는 [[하드코어]]와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요소를 접목하며 실험을 해나간다. 하지만, 90년대의 앨범들은 대개 평단과 팬들의 의견이 엇갈리는데, 1992년에 발매한 'Renewal'은 [[세풀투라]]의 앨범을 담당했던 탐 모리스가 프로듀싱을 하였으나, 팬들의 반응과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평단에서는 대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는 이스라엘에서 촬영한다.
1999년에는 밴드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앨범인 9집 'Endorama'를 발매한다. 전체적인 속도는 느려졌으나, 스타일 면에서 심포닉 메탈의 영향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타이틀 곡에서는 스위스의 고딕 메탈 밴드 [[라크리모사]]의 보컬 티모 볼프가 참여하기도 했다. 이 앨범 역시 평단의 반응은 좋았으나, 이번에도 팬들의 반응은 평단만큼 좋지 않았다. 이때 부터 밴드는 슬럼프를 겪게 된다.
 
=== 2000년대 ===
2000년 들어 [[SPV]]와 계약을 체결한다. 동시에 톰 베테를리가 밴드를 탈퇴하고 전 기타리스트 사미 일리-시르니외가 다시 밴드로 복귀한다. 2001년에 발매한 10집 'Violent Revolution'은 예전 스타일에 멜로딕 데스메탈의 요소를 가미했다. 이 앨범은 평단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상당히 좋은 평을 받으며 다시 저먼 스래쉬의 선두주자로 복귀한다. 카니발 콥스와의 투어 후 2001년 가을 'Thrashback' 이라는 모토 하에 [[디스트럭션]], [[소돔 (밴드)]]과 투어를 가진다. 이 투어에서 세 밴드는 번갈아가며 헤드라이너를 맡는다. 투어 영상은 2003년 라이브 앨범 'Live Kreation'으로, 그리고 'Live Kreation: Revisioned Glory'라는 DVD로 발매된다. 그리고 같은 해 록 하드 페스티벌(Rock Hard Festival)에서 나일, 베이더, 아몬 아마스와 함께 북미 투어에 나선다. 투어를 마친 후 프로듀서 앤디 스닙의 지휘 하에 2005년 11집 'Enemy of God'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전작 'Violent Revolution'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페트로차는 한 인터뷰에서 조지 W.Bush와 오사마 빈 라덴에이 서로를 '신의 적'(Enemy of God)이라고 비방하는 모습에서 앨범 제목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앨범 발매 후 [[다크 트랭퀼리티]], 엑토모프, 헤이트스피어와 유럽 투어를, 베이더, 프로 페인과 북아메리카 투어를 한다. (데스 앤젤은 투어를 취소). 그리고 2005년 6월 3일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페스티벌의 무대에 섰는데, 밴드는 이 무대에 오른 최초의 외국밴드가 되었다. 2006년 2월에는 [[네이팜 데스]], 언다잉, 어 퍼펙트 머더와 다시 미국 투어 길에 오른다. 그리고 여름에는 서머 브리즈(Summer Breeze) 등 다양한 유럽의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2009년 1월 13일 12 집 'Hordes of Chaos' 을 발매하는데, 기존의 메탈 전문 프로듀서를 고용하지 않고, 기존보다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비메탈 계열 프로듀서인 모제스 슈나이더를 고용한다. 2010년 11월에는 [[엑소더스]], 데스 엔젤, 수어사이덜 엔젤스와 스래쉬 페스트 투어(Thrashfest Tour)에 참가해 2011년에는 투어 계획이 없으며, 이듬해인 2012년에 새 앨범을 발매한다고 발표한다.
 
=== 2010년대 ===
소속사 SPV가 파산신고를 한 후, 밴드는 [[뉴클리어 블래스트]]로 적을 옮긴다. 2012년 6월 1일에 발매된 13집 'Phantom Antichrist'의 프로듀싱은 스웨덴의 옌스 보르옌이 맡았고, 독일 앨범차트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벤토르, 토미 베테를리와 함께 작업한 'Endorama', 'Outcast'는 음악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른 앨범인 동시에 팬들의 분열을 야기한 앨범이란 평을 듣는다. 크리스티안 "스피지" 기즐러는 베테를리를 "보기 드문 기타리스트"라고 표현했는데, 그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과 밴드에서 활동한 기간에 남긴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베테를리에게 다시 크리에이터에 가입할지에 대한 의사를 물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 정규 음반 및 EP 싱글, DVD 목록 ==
=== 정규 음반 ===
* 1985: Endless Pain
* 1986: Pleasure to Kill
* 2012: Phantom Antichrist
 
=== 라이브 앨범 ===
* 1990: Doomsday News III – Thrashing East Live (라이브)
* 2003: Live Kreation
* 2012: Terror Prevails – Live at Rock Hard Festival, Pt. 2 (록 하드 紙 부록)
 
=== 베스트 앨범 ===
* 1996: Scenarios of Violence
* 1999: Voice of Transgression
* 2000: Past Life Trauma
 
=== 데모, EP 앨범 ===
* 1983: Blitzkrieg (als Tormentor) (데모)
* 1984: End of the World (als Tormentor) (데모)
* 2012: [[The Big Teutonic 4]] - [[소돔 (밴드)]], [[디스트럭션]], [[탱커드]]와의 스플릿 EP
 
=== 싱글 앨범 ===
* 1987: Behind the Mirror
* 1989: Betrayer
* 2012: Civilization Collapse
 
=== DVD ===
* 2003: Live Kreation – Revisioned Glory
* 2006: Enemy of God – Revisited
 
[[분류:독일의 헤비 메탈 밴드]]
[[분류:1982년 결성된 음악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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