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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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기원전 69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부왕이 죽은 뒤(기원전 51년) 18살에 15세가 된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재위: 기원전 51~47년)와 결혼하여,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재위: 기원전 47~44년)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 기반인 그리스계의 외면으로 파라오 자리에서 일시 물러났다. 이 일로 클레오파트라는 본인을 그리스인의 후손이 아닌 토착 이집트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후에 로마 제국을 이용해 그리스계 헬레니즘 왕국들을 침략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기원전 48년 10월, 클레오파트라 7세는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이집트에 온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협상하였다. 다시 파라오 자리에 복귀한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물리친 후 정치에 몰두하였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레피두스]]와의 [[제2차 삼두정치|삼두정치]]가 깨지자 클레오파트라 7세는 BC 31년 9월 2일 명분상 자신에게 선전포고한 옥타비아누스에 대항하여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을 결행했다.
 
하지만 [[전쟁]]은 실패하였고 자신을 일개용감한 토착 이집트 여인이 아닌 나약한 그리스 여인으로 취급하는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클레오파트라는 깊은 절망감에 시달려 39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뱀]]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여놓고 뱀에 물려 자살했다고 발표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뱀에 의한 자살, 독가스에 의한 자살, 타살, [[에이즈]](AIDS) 감염에 의한 병사(病死) 등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 평가 ==
클레오파트라는 지식인인 블레즈 파스칼조차도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후대의 남성들에게 성적인 관점에서만 평가받았다. 그리고 생전에도 옥타비아누스로부터 로마를 짓밟는 성적인 이집트그리스 여인 취급을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그 이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과는 다르게 클레오파트라가 강대국 로마 제국을 이용하여 나라를 보전하려는 시도가 많았고, 그녀의 진짜 모습은 남성들을 유혹하는 요녀가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 중 유일하게 고대 이집트어를 사용하여사용했고 [[고대 이집트 종교]]의 이름으로 궁전 밖의 세계를 다스려 다시 한번 이집트 황금기를 열고자 노력한 여걸(女傑)이라는 평가가 있다.
 
== 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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