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 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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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와 다른 해상공화국들은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동부 해안 지역에 무역 거점과 식민지들을 세우는데 십자군 전쟁의 이득을 보았다. 특히 피사인들은 [[안티오키아]], [[아크레]], [[야파]], [[트리폴리 백국|트리폴리]], [[티레]], [[라티키아]]에 식민지를 세웠다. 그들은 또한 [[예루살렘]], [[카이사레아]]에도 영토를 확보하였고, 게다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에도 작은 식민지 (적은 자치도를 지닌)가 있었던 것은 물론 [[콘스탄티노폴리스]]에도 가지고 있었는데,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는 그들에게 특별한 계류소와 무역 특권을 부여해주었다. 이 모든 도시들에서 피사인들은 특혜와 면세권을 받았지만, 공격을 받을 시에 이들의 방어에 기여를 해야만했다. 12세기 콘스탄니폴리스의 동부 지역에 있는 피사 지구의 거주민은 1,000명까지 늘어났다. 해당 세기의 몇 년간 피사는 [[베네치아 공화국]]을 능가하는 가장 우세한 대상이자 [[비잔티움 제국]]의 동맹이였다.
 
서부 지중해에선,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1085년 피사에게 [[발레아레스 제도]]에 대한 종주권을 부여해주었지만, 피사 상인들은 [[1113–15년 발레아레스 원정]]의 시초자 중 한 명이였을 뿐이였고,<ref>Charles Julian Bishko (1975), [http://libro.uca.edu/bishko/spr1.htm "The Spanish and Portuguese Reconquest, 1095&ndash;1492"], ''A History of the Crusades, Vol. 3: The Fourteenth and Fifteenth Centuries'', ed. Harry W. Hazard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405.</ref> 그곳의 [[타이파]]를 영구적으로 몰아내는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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