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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보스니아]]는 세르비아와 합치며 독립하려고 했지만 [[베를린 조약 (1878년)|베를린 조약]]에 따라 세르비아 왕국만이 독립하고 보스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넘어가고 만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인 프린치프를 비롯한 남슬라브주의자들은 보스니아가 독립하여 세르비아와 합치는 것을 원했는데,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남슬라브 운동을 부추기는 [[세르비아]]를 제지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영토 내에서 수사를 하게 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담긴 통첩을 보냈다. 세르비아는 요구를 대부분 수락한다고 밝혔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프린치프는 범행 당시에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전쟁이제1차 세계 대전의 끝나기종전 전에이전에 테렌진 감옥에서 25세의 나이로 폐결핵으로[[결핵]]으로 사망했다.
 
{{위키공용|Gavrilo Princip}}